수익률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해외 부동산펀드 ‘시한폭탄’ 돌리기

입력 2024-08-2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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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부동산펀드 1년새 25% ↓…설정액 3200억 넘게 줄어들어
펀드 42개 중 24개 마이너스…운용사들 잇단 만기 연장

▲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자산가 최모 씨(55)는 몇 해 전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로부터 유럽 물류센터에 투자하는 부동산 공모펀드를 추천받고 1억7000만 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그는 원금의 일부를 날릴 처지다. 최 씨는 “부동산의 정확한 위치는 몰랐지만, 해외 부동산펀드가 좋다고 하니 일단 넣었다”며 “자산 포트폴리오에 흠집 가게 생겨 다른 자산 투자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펀드에 경고등이 켜졌다. 국내 투자자들이 투자한 규모가 워낙 큰 데다 미국과 유럽의 부동산 가격 내림세가 예사롭지 않은 탓이다. 이에 자산운용사들은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CRE) 부실을 견디기 위해 잇달아 만기를 연장하고 있다. 일부 상품의 경우 위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날아간 해외 부동산 부자의 꿈

2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리츠재간접 펀드를 제외한 기타 해외 부동산펀드는 1년 사이 평균 24.51% 하락했다. 같은 기간 설정액은 3200억 원 넘게 줄어 현재 2조316억 원을 기록 중이다.

수익률의 경우 기타 해외 부동산펀드 42개 중 57.14%(24개)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가장 손실이 큰 상품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오피스 빌딩에 투자 중인 ‘키움히어로즈유럽오피스부동산’ 1~4호로, 모두 마이너스 71~72%대 수익률을 보였다. 이달 초 재평가한 자산 가격을 펀드 기준가에 반영하면서 981.92원이었던 기준가가 282.49원으로 폭락한 영향이다.

금융투자협회 펀드 공시에 따르면 ‘키움히어로즈유럽오피스부동산’이 담은 자산 가치는 유럽 기준금리 인상과 인근 거래 감소 영향으로 매입가(1억2973만 유로)보다 34% 하락한 8520만 유로로 평가됐다. 이에 당장 내년 2월 26일 만기를 앞둔 이 펀드는 이달 28일 수익자 총회를 열고 펀드 만기를 기존 5년 6개월에서 10년 6개월(만기 2030년 2월 26일)로 연장하는 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키움히어로즈유럽오피스부동산’외에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중이면서 내년에 만기 예정이었던 펀드는 5개에 달했다. 그러나 이 중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호’와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04호’를 제외한 3개 펀드가 만기 연장을 택했다.

내년 1월 만기를 앞둔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 11호’는 올해 10월 펀드 만기 연장을 위한 수익자 총회를 열 계획이다. 내년 7월 25일 만기였던 ‘한국투자뉴욕오피스부동산 1호’는 이미 8일 수익자 총회에서 만기를 10년 9개월(만기 2030년 7월 25일)로 변경했다. 내년 6월 25일 만기였던 ‘한국투자룩셈부르크코어오피스’는 5월 수익자 총회에서 만기를 2030년 6월 25일로 연장했다.

이 펀드들은 만기를 코앞에 두고 손실을 막기 위해 펀드 만기를 연장한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하가 시작되고 미국과 유럽 CRE 시장이 회복세에 들면 매입가 기준으로 자산이 다시 상승하면서 수익률이 선방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 ‘한국투자뉴욕오피스부동산 1호’의 경우 최근 펀드 만기 연장 이유에 대해 “대출만기 연장 이후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고 거래가 활발히 일어나는 시점에 자산을 매각하기 위함”이라며 “현재 미국 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거래가 매우 제한적이며 잠재 매수자들은 정상적인 거래보다는 부실대출채권(NPL) 매수를 활용한 저가매수를 희망해 본건 자산을 매각하기 위해서는 시간 확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해외 부동산의 어두운 미래

문제는 해외부동산 전망에 대한 시각이 국내외 모두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한국의 위험한 베팅이 실패로 돌아가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부동산 투자에 실패한 국내 자산운용사 사례를 집중 조명했다. 현대인베스트먼트운용도 최근 뉴욕 맨해튼의 고층 사무실 건물인 ‘245 파크애비뉴’ 빌딩 인수 과정에 변제 순서가 선순위 대출보다 낮은 메자닌 대출자로 참여했다가 원금 절반을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츠대체투자운용 역시 로스앤젤레스 고층 건물인 가스컴퍼니타워 건물주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면서 대출 원금을 떼일 상황에 놓였다.

증권가에서는 해외 부동산펀드의 만기 연장은 손실 시점을 미루는 ‘시한폭탄’이란 분석이 중론이다. 우선 고금리 시기 이자 부담이 여전하다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 11호’는 이달 초 리파이낸싱을 하면서 대출금리가 3.34%에서 6.64%로 상승했다.

투자회사 아레나 인베스터의 댄 즈원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부동산과 관련해 업계가 느끼는 고통은 초입 단계”라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확산하며 글로벌 주요 도시의 오피스 공실률도 상승세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오피스 공실률은 34.5%에 달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펀드는 특수목적법인(SPC)이 중간에 끼어있어 자산 가격이 반영되는데 시차가 있다”며 “올해 하반기나 내년 뒤늦게 반영된 자산 가격으로 손실이 발생하며 해외 부동산 리스크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펀드를 설정했던 담당자들이 자신이 자리한 시점에 손실을 확정 짓지 않으려 하면서 의미 없는 만기 연장이 반복될 수 있어 우려가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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