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파격적인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정책 이슈를 선점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반도체·이차전지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액공제 직접 환급을 도입하거나, 반도체 산단 설치 비용의 70%를 국가가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줄줄이 발의하고 있다.
일각에선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법안들이 오히려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표 K-칩스법’을 공개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반도체 특별법 패키지’(반도체 특별법 제정안·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를 발의한 뒤, 반도체 산업에 100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K-반도체 대전환 전략 수립 대토론회’에서도 “전례 없는 지원”을 대원칙으로 삼아 반도체 산업 지원에 당이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와 민주당은 반도체 기금 조성과 특별회계 등을 통해 100조원 규모의 효과를 거두는 정책금융 방안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또 “반도체 혁신을 막는 장벽을 허물겠다”며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위한 과감하고 지속적인 지원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에는 반도체 기술에 대한 시설투자 공제율을 대기업은 25%, 중소기업은 35%로 각각 10%포인트(p), 연구개발(R&D) 세액공제율 역시 대기업 40%, 중소기업 50%로 10%p씩 올리는 내용이 담겼다.
올해 말로 예정된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일몰 기한을 10년 더 연장하는 방안도 담았다. 삼성전자 등 업계와 관계 부처, 학계를 포괄한 국가 반도체위원회를 설치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반도체 지원을 의무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간 민주당이 대기업 세제 혜택에 부정적이었던 점을 고려했을 때 이번 법안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관 상임위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분위기도 읽힌다.
야당 측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인 정태호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김 의원 안에 대한 당론 절차를 밟을 준비를 하고 있다”며 “그를 통해 반도체 산업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당 차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도 파격적인 반도체 지원안을 새롭게 꺼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측 간사인 박수영 의원은 전날 ‘스트롱 K칩스법’(국가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민주당 안과 마찬가지로 박 의원 안에도 반도체 연구개발·기술통합 투자 세액공제율을 각각 10%p씩 상향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몰기한을 10년 연장한 점도 닮은꼴이다.
이에 더해 박 의원은 세액공제 규모보다 납부할 세금이 적어 공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 이월해주는 기간을 10년에서 20년으로 연장하겠다고 했다. 업종이나 목적과 상관없이 기업 투자에 일정 수준의 추가 세제 혜택을 주는 임시투자 세액공제를 2026년까지 3년간 재도입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들 외에도 여야는 22대 국회에서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상식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반도체 산단을 조성할 경우 국가가 그 설치비용의 70% 이상을 지원하도록 하는 개정안(국가첨단전략산업법·조세특례제한법)을 발의했다.
그러자 여당은 ‘직접환급’ 제도를 꺼내들었다. 김상훈 의원은 8일 직접환급 및 공제양도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전략기술 사업이 공제액 이상의 영업 이익을 내지 못하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단 지적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김 의원 안은 공제받지 못한 세액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직접 현금으로 환급받거나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국내에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정부 입장에선 보조금 및 인프라 지원에 따른 세수 감소는 부담이다. 이정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문위원은 지난해 11월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액공제율 적용기한을 연장하는 안에 대해 “적용기간을 6년간 연장할 경우 총 3조 1185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추계돼 감세에 따른 조세 기반 잠식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재위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비 세액공제에 따른 조세지출은 2019년 소득세 873억원·법인세 2조2305억원에서 2022년 소득세 1057억원·법인세 3조 6173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는 본지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 바라보면 (세제 혜택을 통해) 대기업에 세금을 환급해주는 부분은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거부감이 들 수는 있다”면서도 “다만 다른 경쟁 국가에서 제공하는 세제 혜택이나 인센티브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