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원, 40년 만에 ‘셰브론 원칙’ 폐기…행정부 권한 축소

입력 2024-06-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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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애매할 때 정부 결정 따르는 원칙
어업 관련 항소서 셰브론 원칙 폐기 다뤄져
보수 6명 찬성, 진보 4명 반대로 폐기
“행정부서 사법부로 권한 이동, 권력의 큰 변화”

▲미국 대법원 앞에 29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보인다. 워싱턴D.C./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소송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면서 현대 미국 행정법의 초석으로 불리는 셰브론 원칙이 미국 대법원에 의해 폐기됐다.

2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대법원은 찬성 6명, 반대 3명으로 40년 만에 셰브론 원칙을 뒤엎었다.

존 로버츠 주니어 대법원장은 “셰브론 원칙은 기각됐다”며 “사법부는 기관이 법적 권한 내에서 행동했는지 결정할 때 독립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셰브론 원칙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고 실행 불가능하므로 기각돼야 한다”며 “셰브론 원칙에 남은 것은 대담한 허세를 가진 썩은 껍질뿐”이라고 설명했다.

셰브론 원칙은 1984년 미국 석유 대기업 셰브론과 미국 천연자원보호협회(NRDC)의 재판에서 나온 것으로, 연방 법률에 명기되지 않거나 애매한 사안에 대해 정부가 합리적으로 자체 해석하면 사법부가 그것을 따르게 하는 원칙을 의미한다. 과학이나 금융 등 복잡한 분야의 법률에선 전문지식을 가진 정부의 해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데 탄생 배경이 있다.

셰브론 원칙은 이후 수많은 판결에 영향을 주면서 미국 행정법에 빠져선 안 될 원칙이 됐다. 지금까지 하급 법원에서만 1만7000건, 대법원에선 70건의 판결이 셰브론 원칙을 적용해 이뤄졌다.

그러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파를 중심으로 셰브론 원칙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결정적인 계기는 대서양에서 청어를 수확하는 한 어업 단체가 셰브론 원칙의 적법성에 대해 대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다. 당시 단체는 정부가 어업 종사자의 무분별한 남획을 막기 위해 감시원을 어선에 동승시킬 수 있고, 그때 발생하는 비용은 종사자가 부담하도록 의무화한 것에 반기를 들었다. 이후 대법원 항소에서 보수파 6명이 폐기를 찬성하고 진보파 3명이 반대하면서 셰브론 원칙은 최종 폐기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이번 결정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성명을 내고 “미국인들은 깨끗한 공기와 물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에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하원 공화당 지도부는 별도 성명에서 “행정국가 종말의 시작”이라며 대법원 판단을 환영했다.

NYT는 “대법원이 행정부 권한을 축소했다”며 “이번 결정은 환경, 의료, 소비자 안전을 규제하는 기관을 포함해 다양한 연방 기관의 움직임에 도전을 일으킬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전했다. 템플대 비즐리 로스쿨의 크레이그 그린 교수는 “이번 판결은 분명히 행정부와 의회의 권한을 사법부로 옮길 것”이라며 “권력의 큰 변화”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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