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2 저발현 개념 도입 계기…유방암 치료 패러다임 재정립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공동 개발한 항암제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트주맙 데룩스테칸)’가 유방암 치료 분야 게임체인저로 자리잡을지 주목된다.
엔허투는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이 적용된 신약으로, 글로벌 매출 1조 원이 넘는 블록버스터 제품이다. 국내에서는 2022년 9월 승인돼 현재 유방암뿐 아니라 폐암과 위암 적응증도 보유했다.
한국다이이찌산쿄와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26일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호텔 서울에서 ‘엔허투가 바꾼 전이성 유방암 치료의 패러다임’ 주제로 미디어 세션을 열고 엔허투를 소개했다.
이날 세션에 참석한 손주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유방암 분류와 엔허투의 기전 및 효과를 설명했다.
지금까지 유방암은 표피성장인자(HER2) 양성 또는 음성으로 구분했다. HER2는 암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유발하는 단백질이다. 유전자 검사 결과 해당 물질의 발현 수준이 높으면 양성(IHC3+ 또는 IHC2+/ISH+), 낮으면 음성(IHC 0, IHC 1+ 또는 IHC 2+/ISH-)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엔허투 등장을 계기로 ‘HER2 저발현(HER2-low)’ 개념이 새롭게 도입되기 시작했다. HER2 발현 수준이 음성보다는 높지만, 양성 수준에는 이르지 않는 모호한 영역의 환자들이 HER2 저발현(IHC 1+ 또는 IHC 2+/ISH-)로 분류된다. 전체 유방암의 50~60%는 HER2 저발현에 해당하는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허셉틴은 HER2 저발현 환자들의 미충족 수요를 상당 부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은 기존에 HER2 양성 유방암 치료 성적을 크게 개선했던 약제인 ‘트라스투주맙’과 ‘T-DM1’ 등의 항 HER2 제제를 통한 치료에는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HER2 음성으로 간주한다고 해도, 시도 가능한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었다.
허셉틴은 약물이 항체에 붙어 세포 내로 들어가 암세포를 타격하는 기전이다. 세포 내에 진입하면 항체와 약물을 붙여주는 링커가 분리돼 약물이 암세포 사멸을 유도한다. 정상 세포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어 이른바 암세포 ‘유도미사일’로 불린다.
엔허투 임상연구 ‘데스티니-브레스트04(DESTINY-Breast04)’ 결과, 엔허투는 HER2 저발현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서 대조군 대비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개선을 보였다. 암이 커지지 않고 유지되는 ‘무진행생존기간’은 호르몬 수용체 양성 환자 코호트에서 엔허투 투약군이 10.1개월, 대조군이 5.4개월로 나타났다. 전체생존기간 역시 엔허투 투약군 23.9개월, 대조군 17.6개월로 차이가 컸다.
엔허투의 이런 효과를 고려해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와 유럽종양학회(ESMO)는 HER2 저발현 환자 치료에 엔허투 활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20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엔허투의 HER2 저발현 유방암에 대한 적응증을 추가로 승인했다.
다만, 현재 국내에서는 유방암 치료 시 엔허투를 사용할 수 있는 환자 범위가 제한적이다. 건강보험 급여가 ‘이전에 한 가지 이상의 항 HER2 기반의 요법을 투여받은 절제 불가능한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비급여 치료 시 경제적 부담이 커 환자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실정이다.
손주혁 교수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에서 환자 생존기간을 개선하며 주목을 받았던 엔허투가 DESTINY-Breast04 임상연구를 기반으로 HER2 저발현 전이성 유방암에서도 항 HER2 제제 최초로 효과를 입증해 HER2 저발현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했다”라며 “전이성 유방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임상적 의미가 매우 크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손 교수는 “지난달 엔허투의 HER2 저발현 전이성 유방암 적응증이 국내 허가되면서 기존에 HER2 음성으로 분류돼 치료에 한계가 있었던 HER2 저발현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가 생기게 됐다”라며 “국내 HER2 발현 전이성 유방암 치료 환경이 더욱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