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저출산, '소멸'의 벽을 넘기 위해

입력 2024-06-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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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9669명. 3월 전국에서 태어난 아이 수다. 3월 기준 출생아 수가 2만 명 밑으로 내려간, 사상 첫 숫자다.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1분기 0.76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합계출산율 0.82명보다 더 낮다. 브레이크가 없다.

통상 출산율이 연말로 갈수록 떨어지는 경향이 강한 것을 감안하면, 이번 숫자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실제 지난해 1분기 합계출산율은 0.82명이었고, 2·3분기는 각각 0.71명, 4분기엔 0.65명을 찍었다. 합계출산율이 0.6명대에 진입한 건 작년 4분기가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올해 최악의 합계출산율을 받아들 것 같은 불안감이 감돈다. 관련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낮았던 지난해(0.72명)보다 더.

사실 저출산이 국가 비상사태 급이라고 해도 결혼과 출산을 강요할 수 없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저성장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결혼, 출산은 내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간 3포세대, 여기서 더 악화한 N포세대, 헬조선. 우리는 지옥 같고 무기력한 청년들의 현실 풍자 언어들을 일시적인 신조어와 삐뚤어진 심리 정도로 치부했고, 여기에 정부는 400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비효율적으로 쏟아내며 인구 절벽을 부채질했다. 2006년 유엔 인구포럼에서 한국의 저출산 현상이 지속하면 '지구에서 사라지는 1호 인구소멸국가'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음에도 우린 골든타임을 잡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전염병, 자연재해, 전쟁 없이도 그간 본 적 없는 충격적인 출산율을 떠안았다.

저출산 문제는 단기간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가부장적 사회 문화, 과도한 업무 강도, 임금 격차, 입시 과열, 높은 집값, 수도권 집중화, 경쟁 압력과 불안. 특히 K-산업화로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루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눈에 띄게 커졌지만 가정에서 여성이 감당하는 가사 노동과 돌봄의 짐이 여전히 과거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출산을 꺼리게 하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또 아이 한 명을 키우는 워킹맘들의 시간 빈곤과 일과 삶의 불균형, 교육비 부담은 둘째를 낳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결혼, 과한 노동(Workism), 교육열, 즉 한국다운 것들이 변해야 한다는 인구학자의 충고가 귀에 박힌다.

대통령은 이날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했다. 저출생 문제를 극복할 때까지 범국가적 총력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고 했다. 저출생대응기획부의 명칭을 '인구전략기획부'로 정하고,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맡아 저출생, 고령사회, 이민정책을 포함한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을 수립하는 중책을 맡게 된다. 저출생 예산에 대한 사전심의권과 지자체 사업에 대한 사전협의권을 주고 강력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육아휴직 급여를 첫 3개월은 월 250만 원으로 대폭 높이고, 아빠 출산휴가도 10일에서 20일로 확대한다.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이 가능한 자녀 연령을 8세에서 12세로 늘린다. 사업주에게 육아휴직 근로자 대체인력 지원금으로 월 120만 원을 지급한다. 국가가 양육을 책임지는 퍼블릭 케어로 전환해 임기 내 0세부터 11세까지 국가 책임주의를 완성한단다. 또 출산 가구는 원하는 주택을 우선적으로 분양받을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엄마 아빠가 함께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정착시키고, 육아휴직 업무 공백을 정부가 함께 나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번 정책이 기존 저출산 정책에서 수치만 키워졌을 뿐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쉽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재원을 얼마나 촘촘하게 투입할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기존에 눈먼 돈처럼 쓰이던 항목은 과감히 도려내는 구조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냉정한 재평가와 맹성이 필요하다.

저출산의 새 판을 짜려면 정치권, 산업계 모두 진정성 있게 진력해야 한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명칭만 바꾼다고 출산율이 늘어날 리 없다. 기업 조직 내 인식과 업무 환경만 바뀌어도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앞으로 20년 뒤 전국 모든 시·도에서 인구가 자연감소 하기까지,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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