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투자하던 투자자들이 빠르게 미국 증시로 옮겨가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2019년 말 기준 84억 달러(11조5794억 원)였던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유 금액이 최초로 800억 달러(110조 원)를 돌파했다. 5년도 채 안돼 10배로 늘어난 것이다.
1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7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 금액은 815억208만 달러(112조3506억 원)로 최초로 8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뉴욕증시가 연일 최고가를 기록하면서 보유 주식이 불어난 이유가 가장 크다.
특히 최근 엔비디아 등 인공지능(AI) 관련주가 시장에서 주목 받으면서 상승률이 크게 올랐다. 엔비디아는 올해 들어서만 150% 가까이 상승했다. 주가가 상승해 보유주식의 평가 금액이 높아진 것이다. 현재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엔비디아(119억 달러), 테슬라(107억 달러), 애플(46억 달러), 마이크로소프트(37억 달러) 순이다.
이렇게 보유주식이 불어난 이유도 있지만,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개미투자자들이 많이 이동한 흔적도 보인다.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올해 들어서만 10조6000억 원을 순매도했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150억 달러(20조6775억 원) 늘어났다. 사실상 ‘머니무브’가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자자들이 미국으로 이동하는 이유는 역시 수익률 때문이다. 국내 증시가 미국 증시에 비해 너무 부진하다. 코스피는 올해 2.01% 오르는 데 그쳤지만, 미국 나스닥의 경우 16.43%, S&P500도 13.03% 올랐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국장(국내증시)은 물리면 죽지만, 미장(미국증시)은 물려도 살아서 나온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증시에 주도주가 사라진 점이 가장 뼈 아프다. 정부가 연초부터 밀고 있는 밸류업 프로그램도 세제 혜택 등 구체적 인센티브 공개가 미뤄지면서 크게 힘을 못 쓰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AI 랠리’에도 SK하이닉스 등 일부 기업만 수혜를 입고 있으며,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 등은 오히려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10년에 걸쳐 꾸준히 추진했던 일본에 비해 급조된 측면이 있는 데다, 정치적 합의와 제도 정비가 필수적인데 아직 가시화된 부분이 없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