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통령 죽음에 사회 분열 심화...“정권 바뀌지 않는 게 더 슬퍼”

입력 2024-05-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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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규모 시위 무력 진압 이후
정권 반대 시민 늘어나
라이시, 판사 시절 좌파단체 5000명 사형 판결 혐의

▲20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발리 에 아스르 광장에서 사람들이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애도하고 있다. 테헤란/AP뉴시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사망을 계기로 이란에서 누적되온 사회 분열과 혼란상이 드러나고 있다. 이란이 20일(현지시간)부터 5일간 애도 기간을 선포했지만, 시민들은 슬픔보단 차분한 분위기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라이시 대통령과 고위 인사들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광장에 모였지만, 대부분 상점은 영업을 지속하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게 로이터의 설명이다.

라이시 대통령은 손꼽히는 초강경파 성직자로, 2021년부터 이란 이슬람 공화국 8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의 집권으로 이란 전역에 보수파 지배력이 더욱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라이시 집권 다음 해인 2022년 9월, 성직자 주도의 신정 체제 종식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구금된 여성이 사망하자, 수많은 시민이 ‘여성, 삶, 자유’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라이시 대통령은 단호한 대처를 약속했고,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UN 통계에 따르면, 진압대의 총격으로 551명이 사망했다.

라이시의 강경 기조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그의 죽음을 축하하며 과자를 나눠 먹는 영상을 온라인에 게재했다. 테헤란의 한 여학생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라이시는 히잡을 쓴 여성에 대한 단속을 명령했기 때문에 죽음에 슬프지 않다”며 “라이시가 죽어도 이 정권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란 당국의 대처가 사회 분열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직자 지지자들은 라이시에 대해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이었다”며 “그의 유산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지속할 것” 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라이시는 1988년 ‘죽음 위원회’로 알려진 비밀 재판소의 판사 출신으로 신정 체제에 반대하는 좌파 단체 약 5000명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혐의가 있다. 라이시는 사형 선고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해당 판결은 이슬람 율법에 따른 정당한 조치라고 말한 바 있다.

신정 체제에 반발하는 시민에게 라이시는 증오의 대상일 뿐이다. 라이시 죽음을 토론하는 온라인 게시글의 한 사용자는 “사형 희생자들에게 위로를 전한다”며 라이시를 비난했다. 그러나 또 다른 사용자는 “라이시의 죽음은 순교자의 죽음”이라고 애도했다.

이란에서는 라이시 죽음 이후에도 비슷한 강경파 인물이 집권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시민은 “한 강경파가 죽고 다른 사람이 이어받으면 우리의 불행은 계속될 것”이라며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고 토로했다. 이어 “사람들은 경제, 사회 문제로 너무 바빠서 이런 뉴스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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