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원계보다 20~30% 저렴한 가격과 높은 안정성 주목
전기차 시장이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 구간에 진입했다. 얼리 어답터 중심의 초기 시장에서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전기차 가진 몇 가지 난관을 뛰어넘어야 한다. 전기차의 높은 가격, 배터리의 화재 위험성 등이 전기차 구매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완성차 업체들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눈을 돌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기차 원가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40%나 된다. LFP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에 들어가는 니켈, 코발트 등 비싼 광물을 값싼 인산철로 대체해 가격을 20~30% 낮췄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LFP 배터리는 크리스털 형태의 육면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격자 구조인 ‘올리빈 구조’를 갖추고 있다. 과충전이나 과방전으로 인한 화재 위험이 낮고 수명도 긴 편이다.
다만 LFP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 대비 에너지 밀도가 낮아 성능이 크게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그간 국내 기업들은 가격이 조금 높더라도 성능이 우수한 삼원계 배터리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완성차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LFP 배터리를 속속 채택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테슬라가 ‘모델 3’과 ‘모델 Y’에 잇달아 LFP 배터리를 실었고, 폭스바겐, BMW, 스텔란티스 등도 LFP를 탑재한 보급형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을 내놨다. 국내에서도 기아가 지난해 출시한 ‘레이 EV’와 KG모빌리티의 ‘토레스 EVX’에도 LFP 배터리가 탑재됐다.
LFP 배터리를 앞세운 중국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CATL이 시장 점유율 25.8%로 LG에너지솔루션(24.4%)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BYD와 CALB의 점유율은 아직 한 자릿수지만,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각각 261%, 594%에 달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국내 기업들도 고객사인 완성차 업체 수요에 발맞춰 LFP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었다. 시장 진입은 다소 늦었지만, 성능을 대폭 끌어올린 LFP 배터리를 통해 ‘기술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이다.
SK온은 지난달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4’에서 ‘윈터 프로(Winter Pro)’ LFP 배터리를 선보였다. 기존 LFP 배터리는 영하 20도 이하 저온에서 주행 가능 거리가 최대 70%까지 감소하고, 충전 성능도 급격히 떨어진다. SK온이 개발한 윈터 프로 LFP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를 19% 높이고도 저온에서 충·방전 용량을 각각 16%, 10% 늘렸다.
LFP 배터리에 망간을 혼합한 ‘LFMP’ 배터리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망간 역시 가격이 저렴해 LFP와 동일한 가격 경쟁력을 보유하면서도 에너지 밀도를 15~20%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LFP 배터리 시장 진입에 늦은 만큼 한국 기업들이 잘하는 ‘기술력’에 집중해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