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한국문학의 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다

입력 2024-03-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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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또다시 스스로 명명한 ‘다케시마(죽도)의 날’인 2월 22일을 즈음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함으로써 외교적 마찰을 일으켰다. 정말 악착같다. 특히 다른 나라를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설득하고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안 된다.

일본이 얄밉기 이를 데 없지만 부러운 것이 있다. 문학과 문학인에 대한 존경심이다. 일본의 대표적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 수상자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없다. 수상작품집을 내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 확실하지만 두 상의 역대 심사위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보다 대중성 있는 작품에 주는 나오키상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사다 지로·에쿠니 가오리·히가시노 게이고가 받았는데 아쿠타가와상은 이들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민 1.5세대인 이회성과 2세대인 이양지·유미리·현월이 재일 조선인 신분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두 상 다 상반기 하반기 2회씩 주는데 5년에 한 번꼴로 ‘수상자 없음’으로 발표된다. 후보작들이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안 주고 만다. 작품만 보고 공정하게 상을 주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일본에 가서 음식점에서 밥을 먹다가 텔레비전 뉴스에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인터뷰가 나오는 것을 보고 문학인이 존중받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탈북자 중에 시집을 낸 이들이 있는데 아직 작품이 무르익지 못해 시는 언어의 질감을 익히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김정애·도명학·설송아·이지명·장해성 등 소설가의 작품은 수준이 아주 높다. 국내에 문학상이 많이 있지만 이들 중 누가 후보자로 거론되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작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는 10년 동안 거의 해마다 후보에 올랐다. 다년간 후보에 오르니까 국내외 언론에서 계속 주목했고, 결국 수상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재작년도 수상자 아니 에르노는 2003년에 이미 그녀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프랑스에서 제정되었고, 수상 이전에 국내에서 16권의 소설이 번역되었다. 2021년도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영국 보호령이었던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섬에서 케냐와 예멘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분쟁과 이주와 난민 문제에 천착할 수 있었다. 받을 사람이 받아 권위를 세운 것이 노벨문학상이다.

언론에서는 해마다 10월 초가 되면 ‘우리가 이제는’ 하면서 추측기사를 쓴다.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수상했던 1968년에는 우리나라 국력이 일본을 따라가기에 한참 모자라 한국인 수상자를 거론하지 못했지만 1994년 오에 겐자부로가 수상하자 언론과 문단, 학계에서 이구동성으로 ‘우리도 이제는’ 하면서 희망에 찬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30년 세월이 흘러갔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집중지원한 두 사람이 요즘은 언급되지 않는다. 한 분은 표절로 한 분은 미투로 낙마하였다. 각종 문학상에 관련된 잡음도 끊임없이 들려오니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안타깝다.

이것도 일본 여행 시에 경험한 것이다. ‘빙점’을 쓴 미우라 아야코, ‘실락원’을 쓴 와타나베 준이치는 대중소설가인데 문학관이 잘 운영되고 있었다. 관이나 시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자원봉사로 운영하고 있었다. 국민시인 기타하라 하쿠슈의 문학관은 규모가 좀 컸지만 재단법인 생가운영회가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문학관이 많은데 학생들을 인솔해 문학기행을 가보면 서너 군데를 제외하곤 늘 우리가 관람객의 전부였다. 한국문학의 앞날을 위해 우리 모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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