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 일대 지상철 구간 지하화(철도 지하화) 추진을 공식화했다. 서울과 구로 등 핵심 구간을 시작으로 부산과 대구 등 전국을 대상으로 내년 말까지 대상 노선을 선정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2022년 대선 때 공약으로 철도 지하화를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정부가 오는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재차 정책을 꺼내면서 ‘사골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여기에 수십조 원 규모의 재원 마련도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첫 삽을 뜨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2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5일 ‘교통 분야 3대 혁신 전략’을 발표하고 철도 지하화를 통한 도시 공간 재구조화 계획을 밝혔다. 철도 지하화는 지상 철도를 지하에 건설하고, 기존 부지 등 상부 공간을 개발해 비용을 충당하는 사업이다.
아직 정부의 공식 사업 구간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앞서 서울시를 중심으로 철도 지하화 논의가 오랜 기간 진행된 만큼 시내 경부선과 경의선 통행 구간이 주를 이룰 전망이다. 실제로 이번 발표 때 국토부가 예시로 꼽은 사업 구간은 ‘서울국제업무축(서울~구로)’과 ‘신산업경제축(구로~석수)’, ‘동북 생활경제축(청량리~도봉)’ 등이다. 해당 구간은 서울시는 물론, 대선과 총선 때마다 지하화 논의가 진행된 단골 노선이다.
문제는 해당 노선 지하화는 10년 넘게 계획을 세우고 발표를 거듭하고 있지만, 사업 진척도는 늘 제자리걸음이란 점이다. 2022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발표한 ‘2040 서울플랜’에 따르면 서울 지상철 주요 지하화 구간으로는 경부선 ‘서울역~석수’ 19.2㎞와 경인선 ‘구로~온수’ 6.1㎞. 경원선 ‘청량리~도봉산’ 13.4㎞ 등이 꼽힌다. 하지만 발표 이후 지금까지 사업은 관련 용역만 진행됐을 뿐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철도 지하화 사업 공회전의 가장 큰 원인은 대규모 사업비다. 2022년 8월 서울시가 펴낸 ‘지상철도 지하화 추진전략 연구’에 따르면 11년 전인 2013년 서울시가 조사한 사업비는 경부선(서울~금천구청) 구간이 9조6247억 원, 경원선 ‘청량리~도봉’ 5조8601억 원 등으로 나타났다. 지하철 2호선 지상 구간인 ‘한양대~잠실’ 약 9㎞ 구간은 당시 기준으로 1조4263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계산 이후 10년 이상 지난 만큼 물가 상승과 용지 보상비용 증가분을 고려하면 추정 사업비의 두 배 이상이 들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부는 “철도 지하화 재원은 상부 개발 이익으로 진행하며 지하화 총비용은 50조 원 안팎으로 추산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수도권 철도 노선을 공유하는 인근 지자체 간 이견 조율도 관건이 될 전망이다. 당장 구로철도기지창 지하화 계획은 기지창을 경기 광명시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지자체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20년 넘게 공회전 중이다. 또 철도 지하화를 위한 상부 개발 과정에 민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 상업 시설 위주의 개발이 진행될 가능성이 커 공적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는 “철도 지하화는 장기적으로 서울의 거대도시화에 필요한 요소로 실현할 수 있지만, 경제적 타당성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실현 가능성을 수치로 따지기보다, 그동안 철도 지하화 추진 동력이 약했던 만큼 이를 보완해 예산을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정책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 철도 지하화 사업 사례로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가좌역부터 용산구 효창공원역 약 6㎞ 구간을 경의선숲길로 조성한 바 있다. 외국 사례로는 미국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과 프랑스 파리 리브고슈 등이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