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된 이민 정책…유럽 경제 해법 고심 [글로벌 선거의 해]

입력 2024-01-0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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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우크라 전쟁 향방 가를 격동의 유럽선거
“근원은 이민자 혐오 아닌 생계 문제”
유럽 극우당 “5성급 호스텔 될 순 없다”
주류 정당서도 이민 태도 변화 조짐

이민 정책이 올해 유럽 선거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인들의 관심이 기후변화 대응, 경제 지원과 일자리 창출에서 이민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유럽연합(EU) 산하 여론조사기관인 유로바로미터가 지난해 9~10월 유럽인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민과 망명 문제’를 최우선 현안으로 꼽은 응답은 18%로, 6개월 전보다 3%포인트(p) 올랐다. 반면 기후변화 대응과 경제 지원·일자리 창출을 우선 다뤄야 한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각각 2%p씩 하락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럽의 이민 문제는 외국인 혐오와 같은 인종적·문화적 갈등이라기보다는 생계 문제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반(反) 이민 정서가 인종 차별이 아니라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서 위태로운 유럽인들의 삶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유럽 경제가 충분히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난민이 대거 유입됐고, 이로 인해 이미 포화 상태였던 공공 서비스 부족이 심화하고 물가 및 임대료 상승이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에 유럽으로의 난민 유입이 더 급증해 갈등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보코니대학의 캐서린 드 브리스 국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우 정당이 득세한 것과 관련해 “젊은 유권자와 극우파 간에 문화적 또는 이념적 동질성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며 “그들은 이민자들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삶 속에서 ‘생계 보장’을 위해 투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작년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우 자유당에 투표했다고 밝힌 한 유권자는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고, 이슬람에 반대하지도 않는다”며 “하지만 이민자들이 자국민보다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 나를 좌절시킨다”고 토로했다.

반이민 정서는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아일랜드에서는 수십 년간 볼 수 없었던 수준의 반이민 폭력시위가 벌어졌다. 아이들을 상대로 한 강력 사건의 용의자가 이민자라는 유언비어가 온라인상에서 퍼진 뒤 수백 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그들은 “이민자들을 내보내라”고 외치면서 약탈과 방화를 동반한 폭동을 일으켰다.

유럽 극우파 정당들은 벌써 이러한 반이민 정서를 앞세워 표심을 모으려고 하고 있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조르단 바르델라 대표는 “유럽이 아프리카의 5성급 호스텔이 돼서는 안 된다”며 “유럽으로 이민자가 대량 유입된 이후 폭력과 범죄가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유럽 전역에서 반이민 정서에 편승한 극우 정당들이 세력을 확장했던 것과 같은 전략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2022년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집권 이후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프랑스 등 각국에서 극우 정당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유럽의 주류 정당들까지 극우 세력의 부상을 막기 위해 이민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있다. 유럽의회 최대 정파인 유럽국민당(EPP)의 만프레드 베버 대표는 대규모로 이주를 억제하지 않는 한 극우파 승리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고 싶어 한다”며 “이민자 수가 감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민 단속이 온건파 정당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드 브리스 교수는 “중도 우파가 극우파 득세에 대응하기 위해 이민에 대해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려는 것은 잘못된 교훈에 기초한 실수”라고 꼬집었다. 단기적으로는 여론을 자극하는 효과적인 선거 전략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극우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불만을 품은 유권자들이 왜 극우 정당에 표를 던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라며 “극우 정당 성공의 원인인 유럽 사회를 괴롭히는 깊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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