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고장 난 기후변화…기후위기 넘어 생존위기”
기후 변화의 심각성이 기후위기 수준을 넘어 인간 생존의 위기가 될 것이란 경고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기상청 국정감사에서 유희동 기상청장이 한 말인데요. 올해 기후변화를 두고 ‘브레이크가 고장 나 멈추지 않는, 기후위기라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질주하는 듯하다’라고 비유한 거죠.
12월임에도 영상 10도의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급기야 장마철 수준의 겨울비가 내렸습니다. 이후 예년 12월 중순 기온보다 5도 이상 낮은 영하 10도의 매서운 강추위가 찾아왔습니다. 역대 12월 중 가장 더웠던 날에서 올겨울 가장 추운 날로 오기까지 일주일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는데요.
북극 기온이 올라가게 되면 찬 공기를 막아주던 제트기류의 힘이 약해지게 되는데요. 이번 ‘북극 한파’는 그 틈을 타 북극 찬 공기가 내려오면서 시작됐습니다. 북극 한기가 영향을 주면서 온도 차가 극심하게 나타났고 독감 환자가 급증하는 상황이죠.
기상 이변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닙니다. 독일에서도 극한 한파가 나타났고 중국 북동부 지역도 영하 40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남반구 쪽 호주는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요. 지구 온난화가 빨라지고 전 세계적인 엘니뇨 현상까지 겹치면서 우리나라, 북반구뿐만 아니라 남반구까지 지구촌 곳곳이 올겨울 유례없는 널뛰기 날씨가 이어지는 기상 이변의 해를 지나고 있습니다.
기후학자들은 지구가 더워질수록 극단적인 날씨 변화는 더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강해지는 겨울철 폭우와 한파, 폭설과 폭풍에 대한 대비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간 한반도는 찬 시베리아 고기압과 따듯한 고기압이 주기적으로 지나가는 전형적인 ‘삼한사온’의 겨울 날씨를 보였습니다. 북서쪽, 시베리아 쪽에서 찬 공기가 내려오면서 조금씩 따뜻해지는데 그렇게 차가우면서 영향을 주는 시기가 사흘, 따뜻해지면서 영향을 주는 시기가 나흘, 이래서 삼한사온이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최근 이 주기가 맞아떨어지지 않고 변동 폭도 훨씬 커지고 있습니다. 북극발 한기가 한반도를 덮치면서 21일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북극 한파’가 찾아왔죠. 이번 한파를 두고 기상청은 ‘이례적’인 이상기후라고 설명했는데요. 단기간에 극단적인 날씨 변화를 보인다는 점이 그 까닭입니다.
특히 한반도로 직진하는 북극발 한기를 꼽았는데요. 보통 한파는 ‘구불구불한’ 바람길을 통과하면서 약해지기 마련인데 이번엔 한반도까지 ‘직선’ 길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북극과 한반도 사이 ‘직선’ 길이 열린 것은 기후변화로 고위도에 부는 제트기류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인데요. 제트기류는 상공 10km 이상 중위권에서 부는 바람을 일컫습니다. 지구에서 부는 가장 강력한 바람이죠.
실제로 올해 북극은 기후 변화로 역대 가장 더운 여름을 기록했는데요. 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청(NOAA)이 12일(현지시간) 발표한 ‘북극 성적표’를 보면 올해 7~9월 평균 지표면 기온은 6.4도를 찍었습니다. 이는 기록이 시작된 1900년 이후 최고 기온이죠.
이런 경우 같은 태양열을 받으면 기온이 더 가파르게 상승하는 ‘북극 증폭’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요. 북극 기온이 올라가 북극과 중위도의 기온 차가 줄면 제트기류가 약해지게 됩니다.
이상 한파에 몸을 움츠렸던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요. 올해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을 보냈던 지구촌 곳곳이 이번엔 기록적 폭설과 한파 등 이상기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전 세계 곳곳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평균적 기상 전망을 벗어난 이상 한파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동북에선 최저기온이 영하 45도까지 떨어지는 등 전례 없는 추위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유럽도 겨울 초입부터 폭설과 한파를 맞고 있습니다. 독일 뮌헨에서는 지난 주말 사이 눈 폭풍이 밀려와 강설량 44cm를 기록하기도 했죠.
이는 역대 12월 최대이자 2006년 3월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뮌헨 외에 독일 다른 도시와 유럽 곳곳에서도 눈이 쏟아졌는데요. 알프스 북쪽으로 독일을 거쳐 스위스 제네바, 러시아까지 강설 영향권에 들었죠. 시베리아 기온은 초겨울 기온으로는 이례적으로 최근 며칠 사이 섭씨 영하 50~57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연구진은 2000년대 이후 동아시아와 북미 지역에서 겨울철 한파가 증가 원인이 대서양과 태평양 중위도 해양전선 지역의 열 축적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는데요.
12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속가능환경연구단 성미경 박사와 연세대 비가역적기후변화연구센터 안순일 교수 연구팀은 이상한파 원인으로 ‘해류’에 주목했습니다. 해류는 각종 부유물질과 용존물질뿐 아니라 열에너지를 수송, 인접 국가의 날씨와 기후에 영향을 미치죠.
특히 대서양과 태평양 중위도 지역에는 좁은 위도 대에서 온도가 급격히 변하는 걸프류와 쿠로시오해류 등 ‘해양전선’이 있는데요. 이 해양전선 지역에 열이 과도하게 축적돼 발생하는 대기 파동열 반응을 동아시아와 북미 지역의 극한 한파 증가 원인으로 지목했죠. 해양전선 지역이 겨울철 한파와 이상고온 빈도를 조절하는 온도조절기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200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우리나라의 이상한파 경향이 바로 이 북대서양의 걸프류 부근의 열 축적 때문인 건데요. 특히 해양전선 지역에서 열이 축적되는 과정은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 지속돼 이 기간에 대륙 지역에서는 이상한파가 나타나는 온난화 정체기가 나타나죠. 반대로 해양전선 지역이 차가워질 때는 이상고온이 나타나는 온난화 가속기가 올 수 있다고 분석했는데요.
장기적으로는 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한반도에서도 겨울철 이상한파와 이상고온이 더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봄 시작된 엘니뇨가 여름 동안 빠르게 발달해 올해 11월부터 내년 1월 정점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했는데요. 2~7년 주기로 나타나는 엘니뇨는 전 세계에 폭염·홍수·가뭄 등을 동반한 각종 기상이변의 원인으로 지목됐죠. 문제는 극한 기후변화가 한반도에 극단적 날씨를 일으키고 있는데 올겨울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엘니뇨란 태평양 감시구역의 수온이 평년보다 0.5℃ 높은 상태가 5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으로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11월12∼18일) 태평양 감시구역 해수면 온도는 28.6℃로 평년보다 1.8℃ 높았습니다. 여기에 바렌츠·카라해 해빙이 평년보다 적은 상태가 겨울까지 지속되면 그 지역의 고기압성 순환이 유지되고 동아시아 지역의 저기압성 순환이 강화되면서 북풍에 의한 차고 건조한 공기가 우리나라로 유입돼 기습 한파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기상청은 올겨울 많은 눈이 내릴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엘니뇨 현상 탓에 우리나라와 가까운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현재 28.6도로 평년보다 1.8도 높아 뜨거운 수증기가 우리나라로 유입돼 찬 공기와 맞부딪혀 눈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2016년 슈퍼엘니뇨로 제주도에는 폭설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기도 했죠.
이번 추위가 23일 아침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올겨울 최강 한파 속 한랭 질환자도 속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토요일인 23일 낮부터 차차 기온이 오르며 추위가 한풀 꺾이겠으나 크리스마스인 25일에도 평년보다 꽤 추운 날씨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이상고온과 이상한파가 몰아치는 한반도. 결국, 온난화로 힘들어진 지구가 보내는 ‘직선 SOS’가 아닐까 싶은데요. 한파 속 대비와 대책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보낸 신호를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시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