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시절 고문·프락치 강요받은 대학생… 법원 "정부가 9000만원 배상하라"

입력 2023-11-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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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중앙지법 후문에서 열린 '강제징집·프락치강요 국가폭력 국가 사과·배상 소송 선고재판 및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 박만규 씨(오른쪽)와 최정규 변호사(왼쪽). 박 씨는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 심리로 열린 선고에서 일부승소해 국가폭력행위에 대한 위자료 9000만 원을 지급받게 됐다. (박꽃 기자 pgot@)
법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고문을 받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박만규, 이종명 씨의 손을 들어주며 “정부가 9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22일 서울중앙지법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재판장 황순현 부장판사)는 “원고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점이 경험칙상 인정돼 국가는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이같이 판시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의 결정과 증거에 의하면 원고들은 (당시 정부가 추진한) 녹화공작 및 선도업무로 불법 구금돼 폭행과 협박을 당했다”면서”원고들은 양심에 관련된 사상 전향을 강요당했고, 동료의 동향을 보고하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으며 이후에도 감시와 사찰을 받은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사건의 소멸시효가 지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정부 측의 항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은 이미 과거사정리법 제정 당시 ‘역사적 진실에 따라 피해를 회복하겠다’는 선언을 한 바 있다”면서 “여기에는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또한 수용하겠다는 취지가 담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화위의 진실규명에 기초해 권리를 행사하는 원고에게 새삼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며 배상을 거부하는 건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국가가 개입해 조직적으로 이뤄진 특수 불법행위에 대한 피해를 회복하겠다는 결정을 하고도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며 책임을 면하려는 것은 용납되기 어렵다”고 못박았다.

진화위가 2022년 발표한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에 따르면 박만규, 이종명 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80년대 대학생활을 하던 중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 고문, 협박, 회유를 당했고 이로 인해 사상을 전향해 원치 않는 프락치(신분을 속이고 활동하는 정보원) 활동을 하게 됐다.

해당 피해 사실이 지난해 진화위를 통해 규명되자 두 사람은 올해 국가를 상대로 3억 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에서 기자회견을 연 박 씨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에서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해줘 참으로 다행스럽다”면서 “다시는 우리나라에 저 같은 피해를 입는 분이 없도록 법원의 엄중한 판결의 사회에 경종을 울렸으면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이날 선고와 기자회견 과정에 함께한 최정규 변호사는 위자료가 당초 청구한 3억 원에 미치지 못하는 9000만 원으로 결정된 것을 두고 "과연 국가에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줄 만큼의 금액인지 의문을 제기한다”면서 “당사자와 논의해 항소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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