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시선] 방송 M&A, ‘공익성 심사’ 필요하다

입력 2023-11-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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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점유보다 여론독점이 문제
英등 선진국, 공익성 심사 필수
한국은 제도 없어…입법화 시급

전통적으로 방송사업은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독점 사업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1991년 종합유선방송법 제정 이전에는 방송사업자에 대한 인허가제도 자체가 없었다.

특히 지상파방송의 인허가 규정은 2000년 통합방송법에서 처음 포함되었다. 이 때문에 방송사업 허가는 정부가 그때그때 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 왔다.

더욱이 방송 소유권 변화와 관련된 인수합병(M&A) 관련 규정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번 허가받은 방송은 영원한 방송’이라는 인식이 상식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2014년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추진 이전까지는 제대로 된 심사가 거의 없었다. 몇 건의 TV홈쇼핑 채널 대주주 변경 승인도 다분히 형식적 절차만 거쳤을 뿐이다.

이와 달리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방송 소유권 이전이나 사업자 간 인수합병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1995년 방송사업자와 통신사업자 간 인수합병을 허용한 미국의 통신법 개정은 획기적 전환점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IPTV와 케이블TV 간 인수합병이 몇 차례 발생하였다. 이 때문에 인허가 심사보다 인수합병 심사가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방송사업자 인수합병은 시장 지배력이나 독점력 같은 경제적 문제보다 프로그램 다양성이나 여론독점 같은 사회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언론매체로서 방송사업자가 가지고 있는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시장경쟁을 중시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도 미디어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엄격한 ‘공익성 심사(public interest test)’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공익성 심사 적용 대상 4개 분야 중에 2개가 ‘미디어 다양성(media plurality)’과 ‘뉴스의 정확한 보도 및 의사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EU 역내 혹은 영국 내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매출 규모를 지닌 미디어 기업 간 인수합병은 ‘미디어 다양성’이나 ‘여론 지배력’과 관련해 공익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심사에는 기업혁신기술부, 공정거래사무국, 방송통신위원회, 경쟁위원회, 경쟁 항소법원 같은 기구들이 함께 관여되어 있다.

심사내용은 영국 기업법(Enterprise Act 2002) 제58조 2C에 규정된 3개 항목이다.

첫째, 다양한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다원성 정도로, 여기에는 동일 권역 내 동일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 숫자, 시청점유율 등이 포함된다. 둘째, 다양한 취향과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 다양성과 보도 균형성, 프로그램 제작·공급 가능성 등을 평가한다. 셋째, 미디어 소유·운영 주체인 개인이나 기업의 책임성을 심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방송사업자 인수합병과 관련된 공익성 심사제도 자체가 없고, 주무 부처와 공정거래위원회 심사를 거쳐 승인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방송보다 공익성이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는 통신사업자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공익성 심사를 받게 하고 있다.공익성 심사란 “경쟁, 기술혁신, 경제성 같은 경제적 요소들뿐 아니라 다원주의, 다양성, 표현의 자유 같은 정치적 요소와 정보의 질이나 공공 서비스 같은 사회적 요소들을 포괄적으로 심의하는 제도”다. 그런 면에서 공익성 제도와 관련된 현행 법·제도는 매우 모순적이다.

지난주 YTN의 공기업 지분을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될 민간사업자가 선정된 것은 향후 미디어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이다.

특히 여론지배력이 강한 1위 보도채널 사업자라는 점은 정치·사회적 영향이 결코 무시될 수 없다. 더구나 일부에서는 공영방송 민영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고, 뉴스에 대한 사업적 영향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아마 영국이나 미국 같으면 당연히 엄격한 공익성 심사를 거쳐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방송법을 포함한 법 어디에도 인수합병과 관련된 공익성 심사 규정은 없다.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장 요소들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요소들에 대해서도 공익성 심사에 준하는 치밀한 승인 절차를 수행해야만 한다.

물론 장기적 관점에서 방송사업자 인수합병과 관련된 공익성 심사제도의 법제화가 시급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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