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빛 좋은 개살구’ 美 대학졸업장

입력 2023-09-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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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자랑하던 대학 교육
높은 학비에 빚쟁이 졸업 ‘허다’
양극화·교육실패 한국과 유사해

‘메이드 인 USA’가 세계 표준인 시절이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미국산 제품을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자동차, 무기에서부터 담배에 이르기까지 ‘미제’의 품질은 볼 것도 없었다. 제조업이 개발도상국과 중국, 동남아로 대거 빠져나간 이후에는 금융, 첨단 기술제품, 서비스 시장을 석권했다.

그 중의 하나가 교육이었다. 특히 대학 교육은 단연 세계 최고였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파리대학 등 세계 유수의 대학들을 제치고 하버드와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같은 명문대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 그런 미국 고등교육이 서서히 빛을 잃어 가고 있다.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겨주는 보증수표나 다름없던 미국 대학 졸업장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인 86%가 대학에 가는 게 훌륭한 투자라고 응답했다. 대졸자들은 고졸자들보다 수입이 3분의 2 이상 높았으니 당연했다. 실제로 고교 졸업생 70%가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장은 확고한 출세와 성공의 수단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자녀가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절반수준으로 떨어졌다. 학위가 중요하다고 응답한 청년들도 10년 사이 74%에서 41%로 줄었다. 그 결과 대학 진학률이 62%로 떨어졌고, 대학생 숫자도 10년 만에 250만 명이 감소했다.

한국은 어떤가. 대학진학률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73%를 웃돌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학벌지상주의 사회라서 그렇다 치자. 영국과 캐나다, 아일랜드, 스위스 같은 나라들도 대졸자 비율이 거꾸로 높아졌다. 영국은 2016년 이후 학부생 숫자가 12% 늘었는데, 같은 기간 미국은 8%가 감소했다. 미국 대학 주가가 예전 같지 않은 건 유학생(대학교 이상) 수에서도 볼 수 있다. 팬데믹 이후 일시 회복세를 보이던 유학생 숫자는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 출신 유학생이 제자리 걸음을 보이고 있고, 한국 유학생 수는 크게 줄었다. 한때 6만 명이 넘던 유학생 수는 지난해부터 5만 명 밑으로 뚝 떨어졌다.

경제 논리로 보면 미국 대학의 주가하락의 원인은 투자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학비가 워낙 비싸 투자수익성이 떨어진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 덴마크 대학들은 학비를 전혀 받지 않는다. 투자비가 ‘제로’다. 이탈리아, 스페인은 연 2000달러(약 266만 원) 선이다.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투자할 만하다.

미국은 다르다. 사립대는 연간 약 5만8000달러가 든다. 명문 사립대는 등록금만 6만~7만 달러다. 생활비까지 합치면 어림잡아 연 10만 달러쯤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융자를 받지 않고 학비를 다 내는 학생은 많지 않다. 학생들은 빚쟁이 신세로 교문을 나서게 된다. 미국 대학 졸업생들이 안고 있는 학자금 부채는 약 1조6000억 달러. 15년 사이 3배나 늘었다. 최근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은 시쳇말로 ‘여섯 자리’ 초봉을 받으며 월 3000달러짜리 아파트에서 사는 걸 두려워 하지 않지만 실은 속 빈 강정이다.

부모 세대가 학자금 융자 빚 없이 졸업, 저축으로 재산을 일구었다. 그러나, 밀레니얼 세대들은 저축을 모른다. 초일류기업에 입사하지 않는 한 학자금 융자상환에 렌트비조차 감당하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분야 전공자들의 현실은 더 비참하다. 연방준비은행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졸자의 3분의 2가 급전 400달러를 마련하기 힘들다고 한다. 이들에게 대학 졸업장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결국 양극화가 문제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들은 부자 학생 유치에 혈안이다. 가난한 학생들은 입학 사정과정서 밀리고, 취업에서도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어중간한 대졸자들이 갈 데가 없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 기술직 우대를 부르짖지만 주어지는 일자리는 배달원, 요리사 같은 저임금 서비스직이 대부분이다. 내년 선거에서 기소돼도 트럼프를 찍겠다는 저소득 블루칼라 계층이 갖고 있는 불만은 양극화의 산물이자 대학 교육의 실패일 수 있다. wanseob.k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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