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흉악범죄로 사회가 충격에 빠졌을 때, 서울시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관악구 신림동 범행 현장을 직접 찾았다. 사건 발생 하루 만이었다. 묻지마 범죄 예방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선언했고, 범죄 발생 엿새 만에 25개 자치구 구청장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경쟁적으로 대책이 쏟아졌다. 대응만 놓고 보면, 신속했고 또 절실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게 이상할 만큼.
나열된 대책들을 보고 있자니,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CCTV 설치 확대. 기시감이 들었다. 마약 단속 대책에도, 폭우 예방 대책에도 등장하던 ‘단골’ 메뉴 아니던가. 지하철 보안관 순찰 강화. 헛웃음이 나왔다. 사법권이 없어 취객한테 얻어맞아도 속수무책이라는 ‘지킴이’ 아니던가. 더 잔인하고 대담해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꺼내든 무기치고는 구식이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게 이상할 만큼.
낯설지 않은 대책에 대한 의문은 어느 식사 자리에서 풀렸다. 한 인사는 “문제가 생겨 대책 마련을 지시하면 공무원들은 과거를 뒤진다. 그중 어그러졌던 대책을 또 들고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안전대책으로 CCTV가 언급된 건 200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등장했다. 물론 변주가 있었다. ‘종합’, ‘지능형’, ‘원스톱’이란 말을 덧붙이며 진화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묻지마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목되는 사회적 외톨이 대책도 마찬가지다. ‘고립청년 사회적 자립 지원사업’, ‘고립은둔청년 종합서비스 지원사업’으로 더하고 빼고 붙이고 떼는 작업이 이뤄졌다.
정책이란 게 단박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는 마술지팡이일 수는 없다. 급변하는 현실을 반영해 수정·보완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문제는 물을 붓고 또 부어도 차오르지 않으면, 밑 빠진 독은 아닌지 한 번쯤 점검해보는 ‘수고로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각종 사건·사고가 들끓으면서 서울 시내 설치된 CCTV 수는 8만 개를 넘어섰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했다. 2022년 112 신고에 접수된 5대 강력범죄(살인·강도·성폭력·절도·폭력)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 이상 증가했다. CCTV가 만병통치약일 수 없지만, 한 번쯤은 따져봐야 했다. 이게 과연 CCTV 수만의 문제인지를. CCTV를 늘려도 이를 모니터링하면서 이상을 감지하고 위기를 관리할 관제센터가 제 역할을 못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자치구 관할인 관제센터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사후관리에 구멍이 뚫린 셈이다.
공무원들도 억울함이 없는 건 아니다. 돌려막기 대책조차 늘 벽에 부딪힌다. 관제센터의 경우 ‘총액인건비제한’에 걸려 인력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행안부의 ‘재가’가 필요하다.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상당수 대책이 이런 패턴을 따른다. 뭔가를 좀 해보려 하면 법령 개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 부처의 ‘갑질’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싱가포르가 1965년 517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GDP를 8만 달러까지 끌어올리며 아시아 최고 국가로 성장한 비결엔 ‘공무원’이 빠지지 않는다. ‘일반적인 상식에 도전하고, 혁신적인 발상을 시도하며, 신기술을 연마하고, 디지털로 무장한다’. 벤처 사업가에나 어울릴 법한 행동강령이 공직사회를 지배한다. 그 탁월함이 창의적인 해법을 만들고, 정책의 효율성을 높였으며, 신뢰라는 사회적 자산을 구축했다. ‘철밥통’ ‘복지부동’ ‘탁상행정’이란 수식어가 붙는 한국엔 낯선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