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스스로 공급망(협력사 등) 내에서 발생하는 환경·노동자 보호 위험 요소를 식별토록 하는 이른바 ‘공급망 실사법’ 제정안이 국내에서 처음 발의됐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안’(이하 공급망 실사법)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공급망 실사’는 기업이 자체 활동뿐만 아니라 그 자회사와 협력사에서 일어나는 인권 및 환경 문제를 식별하고, 이를 예방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경영방식을 말한다. 기업이 공급망의 비재무적 리스크, 그중에서도 특히 ‘환경’과 ‘인권 침해’ 사안에 주의를 기울이고 필요한 조치를 하는 과정이다.
정 의원은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나 환경파괴를 방지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면서 “공급망에서의 인권·환경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률 발의는 (이번이) 아시아에서 최초”라고 설명했다.
최근 유럽연합(EU)이 ‘공급망 ESG 실사’ 법을 마련하는 등 세계적 추세가 된 만큼, 선진국 반열에 오른 들어온 우리나라도 관련 법 체계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게 정 의원의 설명이다.
먼저 제정안은 ‘인권환경 실사’를 ‘기업이 이해관계자와 소통·협력하면서 자신의 기업활동으로 인한 인권환경 위험을 방지하거나 완화하는 과정’으로 정의내리고 있다.
또 제정안에는 정부로 하여금 기업이 인권환경 실사를 원활히 이행할 수 있도록 인권환경 실사 관련 지침과 정보공개 표준을 마련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뿐만 아니라 실사 관련 컨설팅, 교육, 훈련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업에겐 인권환경 실사 의무를 부여했다. 협력사 등 공급망이 다른 사람의 인권 또는 환경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권리 구제 수단을 마련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은 관련 인권환경 실사를 이행하기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책임자를 지정해야 한다. 실사 계획 및 결과 등을 심의, 의결하는 위원회 설치도 의무화했다. 아울러 협력사 등 공급망에 대한 실사는 연 1회 확인하도록 했다.
예컨대, 기업 활동이 전쟁 범죄와 반인도 범죄, 집단살해 등 국제법상 반인륜적 불법행위에 관여돼 있다거나 아동 노동에 관여돼 있단 우려가 있는 경우, 기업은 해당 위험 요소를 지체 없이 확인해야 한다.
대상기업의 범위는 EU 등의 실사 지침을 고려해,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 매출액 2000억원 이상 기업으로 설정했다. 기업의 대응능력을 고려해 중소기업은 제외했다는 게 정 의원의 설명이다.
정 의원은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선진경제에 걸맞게 세계적으로 기업과 인권을 선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선 기업별 실사 방식이 달라 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단 우려도 나온다. 김기만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본지에 “큰 틀에서는 법적 규제나 제도적 차원에서 접근을 하지만 결국엔 개별기업에게 의무로 주어지는 순간 기업별로 대응 방식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A라는 기업이 납품사가 한 5개가 있는데 어떤 룰(rule)과 기준을 가지고 실사를 할 거냐는 건 법에는 명시돼 있지만, (협력사 등 공급망에 대한) 실사 강도라든가 강제하는 정도의 행위는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가의 척도가 ‘인권’과 ‘환경’이다보니 기준이 명확히 설정되기 어려워 그 외적인 요소가 개입할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김 부연구위원은 “어떤 기업과 공급망 간의 관계에서 오는 바게닝 파워(bargaining power, 협상을 유리하게 할 수 있는 힘)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단 느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나 ‘안전’이라든가, ‘환경’은 절대적인 기준을 갖고 얘기한다기보다 정성(定性)적인 지향점이 많이 담겨 있는 것들이다. 기업들이 함부로 잣대를 들이대기가 어렵다. 절대적 척도가 없다 보니 그렇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