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대면 진료 좌초 위기, 또 짓밟히는 혁신

입력 2023-08-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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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원격의료)가 직역단체 반발과 국회 제동 등으로 좌초 위기에 처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어제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국민 건강 및 의료체계를 위협하는 초진 비대면 진료는 절대 불가하다”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를 악마화한 셈이다.

원격의료의 열쇠를 쥔 입법부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4일 개정안에 보류(계속심사) 판정을 내렸다. 3월과 6월에 이어 세 번째 제동이다. 9월 정기국회 일정을 감안하면 연내 법안 처리는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나온다. 약사 출신들의 반대가 크게 주효했다.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서영석 의원과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이 모두 약사 출신이다.

비대면 진료는 1988년 원격영상진단 사업을 시작으로 30년 넘게 시범 사업 형태로 이뤄져 왔다. 변화를 부른 계기는 코로나19였다. 정부가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20년 빗장을 풀자 비대면 진료는 괄목할 성과를 냈다. 3년여간 수혜자 1400만 명, 진료 3661만 건의 실적을 낸 것이다. 비대면 진료의 효용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할 방법은 이제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6월 이후 비대면 진료는 설 자리를 잃었다.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이 하향 조정돼 기존 법체계상 ‘시범 운용’ 신세로 다시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초진이 허용되고 의약품 재택 수령이 가능했던 코로나19 기간과 비교하면 그 내용도 반쪽짜리다. 게다가 계도기간마저 이달 말 끝난다. 시범사업은 계속된다지만 지침위반 시 행정처분이 본격화된다. 기피 현상이 들불처럼 번질 게 뻔하다.

바람이 거세면 풀은 알아서 눕게 마련이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은 줄줄이 사업을 접고 있다. 나만의닥터는 9월부터 비대면 진료 접수를 받지 않는다. 닥터나우도 서비스 축소나 사업 전환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듭, 바로필, 썰즈, 최강닥터, 체킷, 파닥, MO(엠오) 등은 이미 서비스를 접었다.

해외 사정은 딴판이다. 일본은 ‘단골의사’, 프랑스는 ‘주치의’ 등의 플랫폼을 통해 수혜 대상을 넓히고 비용도 낮추고 있다. 국책연구소인 보건사회연구원은 그제 월간 보건복지포럼에 실린 ‘비대면 진료 국내 현황 및 국외 사례’를 통해 국내 시범사업의 비대면 진료 수가가 일본, 프랑스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우리도 지혜를 모으면 비대면 진료의 편익을 더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국민 후생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으기는커녕 비대면 진료의 관 뚜껑에 대못을 박지 못해 안달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5월 말 타다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정치권은 반성문을 내놓고, 타다 금지법을 손보겠다며 호들갑도 떨었다. 하지만 바뀐 것은 없다. 비대면 진료가 제대로 닻도 올려보지 못하고 좌초하기 일보 직전이다. 이런 현실을 앞에 두고 뭔 혁신을 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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