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신중한 검토' 의견에 의원입법 추진 속도↓
국회입법조사처 "신속한 논의와 대응 이뤄져야"
#자영업자 A씨는 거래 은행에서 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에 의해 지급정지됐다는 안내 문자를 받고 사업자 통장에 출처를 알 수 없는 10만 원이 입금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사업자 통장과 개인 통장이 모두 거래 정지가 됐고 입금과 출금이 모두 막혀 장사를 쉴 수밖에 없었다. A씨는 거래 은행으로부터 '통장협박' 피해를 입은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전통적 방식의 계좌이체형 보이스피싱 피해금은 줄어들고 있지만, 신종 보이스 피싱 피해는 속출하고 있다. 보이스피싱을 신고하면 상대방의 계좌가 지급정지된다는 점을 악용한 ‘통장협박’이 대표적인 예다.
국회에서 통장협박으로 인한 소상공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내용의 법안이 두 차례 발의됐지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금융권에서는 개정안 입법이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시중은행 사기이용계좌 지급정지 요청건수는 2020년 3만3730건에서 2021년 4만5321건으로 1년 새 34% 증가했다. 이중 채권소멸이 정상적으로 진행된 경우는 같은 기간 2만1794건에서 2만3750건으로 9% 증가했다.
금융권에서는 사기이용계좌 지급정지를 요청한 건수 중에서 피해구제를 신청하지 않았거나 계좌 주인이 이의제기를 해 채권 소멸이 정상적으로 진행된 경우 ‘통장협박’이 이뤄졌다고 본다. 보이스피싱 피해구제 절차에 따르면 지금정지 이후 금융회사가 금융감독원에 사기이용계좌 명의인의 예금채권을 소멸하기 위한 절차 개시 공고를 요청하고 이에 따라 금감원이 채권소멸절차가 개시된 사실을 공고하면 2개월 후 예금채권이 소멸된다. 이후 피해금 환급이 지급돼 지급정지가 해제된다.
즉, 채권소멸절차는 지급정지 해제 직전단계로 이 단계의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은 '통장협박' 피해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통장협박’은 계좌에 임의로 금전을 입금하고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금융회사에 허위 신고해 계좌를 지급정지 시킨 후 계좌주인에게 “지급정지를 해제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신종 보이스피싱 방식이다.
문제는 주로 계좌가 공개돼있는 자영업자 등이 피해 대상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범인은 주로 타인 명의의 계좌로 접속해 타인의 계좌에서 통장협박 대상자들에게 소액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본인 명의의 계좌로 통장협박을 하는 경우 검거될 수 있어서다.
통장협박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가 범인에게 돈을 보내도 범인이 지급정지 해제를 할 수 없게 되는 이유다. 이 경우 자영업자는 영업에 큰 지장을 입게 된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피해구제신청을 받은 금융회사는 사기이용계좌의 전부를 즉시 지급정지조치해야 하고 통장협박 피해자는 금융회사에 보이스피싱을 하지 않았다고 소명할 기회가 없어 피해금환급절차가 종료되는 약 3개월간 관련 계좌 사용이 정지된다.
이에 금융당국은 앞서 2월 ‘제2차 금융분야 보이스피싱 대응방안’에서 피해금 갈취에 이용된 계좌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피해금액을 제외하고 거래를 허용하도록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 의원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분쟁소지가 있는 금액만 지급정지하고 나머지 입출금과 전자금융거래는 허용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후 의원 법안이 두 차례 발의됐지만 현재 정무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앞서 3월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돼 심사 절차를 밟고 있다.
개정안은 통장협박 피해자에게 ‘소명할 기회’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회사가 피해 계좌의 기존 거래 내역을 확인해 전부지급정지로 인한 상당한 재산상 손실이 예상되는 경우, 피해금을 초과하는 일부에 대해서만 지급정지 조치를 할 수 있게 한다. 계좌주인이 이의제기를 통해 사기 행위를 하지 않았음을 소명하면 피해금을 제외한 금액에 대해서는 지급정지를 종료하도록 하고 거짓 피해신고를 한 자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한다.
그러나 이후 진행 상황이 불투명하다. 박재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6월 한 차례 정무위원회에서 논의됐지만, 검토보고서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은 상태다. 정무위 수석전문위원과 금융위, 은행연합회 측은 개정안의 ‘상당한’ 재산상 손실과 ‘피해금을 초과하는 일부’가 불명확하다는 점을 들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달 18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도 같은 법안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통장협박을 당한 경우, 계좌 주인이 해당 계좌가 피해 금액 편취에 이용된 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을 객관적인 자료로 소명하면 지급정지 이의신청이 가능하도록 하고 계좌 잔액 중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에 한해서만 일부 지급정지 조치를 할 수 있게끔 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지급정지 제도를 악용한 통장협박 범죄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신속한 논의와 대응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