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부터 윤한결까지 '콩쿠르' 천재들은 많은데…‘K-클래식’은?[이슈크래커]

입력 2023-08-07 15:48수정 2023-08-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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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한국인 지휘자 윤한결(29)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젊은 지휘자들의 등용문으로 평가되는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헤르 베르크 폰 카라얀 협회와 세계적 클래식 음악 축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주관하는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은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이름을 딴 국제 콩쿠르로 한국인 지휘자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윤한결이 처음입니다.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은 차세대 스타 지휘자를 배출하는 콩쿠르로 유명한데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차세대 지휘자를 키우기 위해 강력하게 밀고 있는 대회로 콩쿠르 심사위원이 대부분 주요 극장장이나 페스티발 예술감독출신들이기에 연주기회가 많이 주어집니다. 영국 버밍엄 시포니 수석 객원지휘자 미르가 그라지니테 틸라, 네덜란드 국립오페라 상임지휘자 로렌조 비오티,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음악감독 아지즈 쇼카키모프 등 이 대회 우승자들이 지휘계 샛별로 떠올랐죠.

2년마다 열리는 이 콩쿠르에 올해는 54개국에서 젊은 지휘자 323명이 도전했습니다. 심사위원단은 이 가운데 준결선 진출자 8명을 추지로 4월 경연을 거쳐 윤한결 등 3명의 결선 진출자를 뽑았습니다. 대회 우승자가 되면 1만5000유로(2100여만 원)의 상금뿐 아니라 내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지휘할 기회도 얻게 됩니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조성진을 시작으로 임윤찬까지 이제는 한국인이 우승하지 않은 국제대회를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일각에서는 한국 대중가요(K팝)에 빗대 ‘K클래식’ 돌풍을 언급하며 한국도 어엿한 클래식 강국에 들어섰다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는 ‘K-클래식’ 돌풍 비결을 담은 다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클래식의 변방이었던 우리나라가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봤습니다.

▲6일(현지시간)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잘츠부르크 국립음대명) 대강당에서 열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콩쿠르에서 우승한 윤한결이 결선 무대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한결, 韓 최초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콩쿠르 우승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윤한결은 서울예고 재학 중 독일로 건너가 뮌헨 음대를 졸업했습니다. 윤한결이 지휘자로서 이름을 알린 것은 2019년 세계적 음악축제 중 하나인 스위스의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에서 지휘 부문 1등상인 네메 예르비상을 받으면서입니다. 이후 제네바 대극장, 뉘른베르크 국립극장에서 부지휘자로, 메클렌부르크 주립극장에서 카펠마이스터(음악 총괄)로 경력과 경험을 쌓았습니다.

윤한결은 이때의 수상 경험이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전환점이 됐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이후 윤한결은 2015년 제네바 작곡 콩쿠르 2위에 오르는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쌓으며 작곡 분야에서도 이름을 알렸지만 최근에는 지휘 활동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세계적인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다니엘 바렌보임, 정명훈과 첼리스트 요요마 등이 속한 클래식 아티스트 기획사인 아스코나스 홀트와 전속 계약을 맺기도 했는데요.

6일 윤한결은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최대한 많은 오케스트라를 만나며 연주를 같이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윤한결은 대회 결선 무대에서 멘델스존의 교향곡 3번 가단조 ‘스코틀랜드’,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 모차르트의 아리아 ‘오, 그대 온화한 별이여’, 한국 작곡가 신동훈의 챔버 오케스트라곡 ‘쥐와 인간의’ 등 4곡을 지휘했습니다. 윤한결과 우승을 다투던 비탈리 알렉세노크(벨라루스)와 토비아스 뵈게러(오스트리아)는 5일과 6일 각각 지휘했는데요.

윤한결은 결선 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측과 인터뷰에서 “멘델스존 교향곡 3번에 가장 중점을 두고 지휘하겠다”며 “대회명이기도 한 지휘자 카라얀은 성취를 이룬 지휘자이지만 제 생각에는 전 세계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음악의 언어를 소개한 점에서 위대하다”고 언급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8일 오후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루체른 심포니와 협연에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롯데콘서트홀
벨기에 음악 저널리스트는 왜 ‘K클래식’ 비결을 연구했을까

세계적인 권위의 국제 음악 콩쿠에서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수상을 휩쓸고 있는데요.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해외 무대에서 잇따라 희소식을 전하며 몇 해 전부턴 ‘K-클래식’이라는 말이 순수음악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전 세계를 사로잡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K클래식 열풍’의 시작이었는데요. 조성진에 이어 피아니스트 임윤찬(18·반 클라이번 콩쿠르), 바이올린 양인모(27·시벨리우스 콩쿠르), 첼로 최하영(24·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피아니스트 이혁(22·롱 티보 콩쿠르)등이 최정상급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여기에 몬트리올·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수연(28)·박재홍(23)까지 최근 몇 년간 세계 유수의 콩쿠를 석권한 연주자들만 놓고 본다면 한국은 최상위권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한국인 연주자만해도 올해 상반기에만 37명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높아진 ‘K클래식’의 인기에 위상을 분석한 다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벨기에 공영방송 RTBF의 클래식 음악 전문 프로듀서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티에리 로로(64)는 2021년 ‘K클래식 제너레이션’ 다큐 영화를 제작해 외국인의 시각으로 비결을 살펴봤는데요. 이 영화가 꼽은 ‘K클래식’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바로 개인과 부모의 희생입니다. 감독은 음악가 한 명을 키우는 것은 일종의 ‘가족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는데요. 콩쿠르는 학생의 노력뿐 아니라 교사와 부모가 최선을 다해 조건을 맞춰줄 때 훌륭한 성적이 나온다고 평가합니다.

여기에 부모의 헌신적 지원과 경쟁 위주 교육은 여전하지만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교육 시스템이 바뀌었다고 분석합니다. 로로 감독은 “한국은 부모가 어떤 것이 아이에게 좋을지 얘기하고 적극적으로 배우게 한다. 아이가 연주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도록 지원도 해준다”며 “다른 사회적 생활이 없으면 감정 개발이 어려울 수 있는데 한국에는 연주도 굉장히 잘하면서 감정 표현도 해내는 연주자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간 한국 음악가들은 기교는 훌륭하지만 감정이나 표현력을 부족하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로로 감독은 한국인을 이탈리아 시칠리아인에 비유하며 감정이 훨씬 풍부하고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분석했습니다. 최근 등장한 ‘K클래식’ 세대는 음악을 통해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고 발산하는 에너지와 표현력까지 갖췄음을 강조했습니다. 또 장르를 가리지 않는 한국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도 빠질 수 없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발상지인 유럽에서는 관객 대부분이 노년층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며 클래식 음악가를 마치 ‘록스타’처럼 받아들이는 모습도 클래식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벨기에 공영방송 의 공연·연주실황 녹화·중계 담당 책임자이자 음악 다큐멘터리 감독인 티에리 로로. 한국 클래식 음악을 다룬 자신의 두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개봉을 앞두고 17번째 방한했다. 사진제공=엣나인필름
K클래식, 영재는 있지만...

유례없는 ‘K클래식’ 흥행은 어렵고 멀게만 느꼈던 클래식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계기가 됐지만 빛에 가려진 그림자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로로 감독은 한국이 국제 콩쿠르트에서 유독 강한 이유로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체계적인 영재 교육 시스템, 부모들의 헌신적 지원 등 세 가지를 꼽았는데요. 그가 꼽은 K클래식의 어두운 면은 1등만을 기억하는 한국식 성과주의 입니다. 아티스트들이 개성을 표현하도록 장려하는 분위기, 국가의 집중 지원 등은 우리나라가 국제 콩쿠르에서 강할 수밖에 없는 동력으로 꼽히지만 음악은 콩쿠르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죠.

빼어난 젊은 음악인들은 많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나 대중의 관심도 면에서 일본의 클래식 산업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데요. 국제 콩쿠르 우승자를 중심으로 한 ‘팬덤’이 한국 클래식 시장을 이끌지만 ‘세계 1등’을 획득하지 못한 연주자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제한적입니다. 이를 두고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한국의 클래식 연주자들이 석권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클래식 강국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총장은 우리나라에는 빼어난 젊은 음악인들은 많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나 대중의 관심도 면에서 일본의 클래식 산업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는데요. 특히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해도 반짝 인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콩쿠르 강국은 맞아도 아직 클래식 강국은 아니다”고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6월 클래식 전문가들과의 간담회에서 “K-컬처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세계무대에서 K-클래식의 활약과 이를 이끌어갈 인재 양성을 뒷받침할 정책적 지원의 중요성이 더욱 명확해졌다”고 언급했습니다. 문체부는 국내 유수 음악제를 K-클래식 해외 확산 거점이자 문화관광자원으로 성장시키는 계획을 논의했습니다.

대내외 정치·경제가 어렵지만 K팝에 이어 K클래식에서 반가운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는데요. 한국의 음악 영재들은 차고 넘치지만 설 수 있는 무대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언론과 대중은 ‘신동’‘영재’ 등의 타이틀에 주목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연주자의 뛰어난 음악을 더 많은 이들에게 퍼뜨릴 무대일 것입니다. 뛰어난 감수성을 바탕으로 끈기까지 갖춘 한국인의 DNA가 다양한 분야에서 발현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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