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끊이지 않는 신종 보이스피싱, 방지책도 진화해야

입력 2023-07-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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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때였다.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해놓다보니 부모님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수차례 받지 못했다. 부모님은 이때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연락을 받고 내게 확인 전화를 한 것이었다.

당시 사기범은 부모님께 전화해 “당신 아들 이재영 맞지? 아들을 납치하고 있으니 다시 전화하는 계좌로 5000만 원을 입금해야 풀어줄 것”이라고 했다. 마치 사기범은 내가 전화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아는 듯했다. 이후 부모님은 내가 진짜 납치됐는지 걱정돼 수차례 전화했지만, 전화통화를 못 한 채 사기범의 전화를 기다렸다.

이후 사기범은 부모님에게 재차 전화해 계좌번호를 불러줬다고 한다. 부모님은 이때 “내 아들을 몇 명이 납치했냐”고 물었다. 사기범들은 순순히 두 명이 납치했다고 했고, 부모님은 그제야 “내 아들은 두 명이서 납치할 수 있는 덩치가 아니다”라며 믿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자칫 수천만 원을 단 두 통화에 빼앗길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체 보이스피싱 건수는 2018년 3만4132건에서 2022년 2만1832건으로 36% 감소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통장협박이나 간편송금을 이용한 신종 수법의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4040억 원에서 5438억 원으로 34.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보이스피싱 규모는 줄어도 신종 수법의 보이스피싱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다양한 수법으로 보이스피싱이 진화하는 데다 쉽게 접하다 보니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엄습한다. 실제로 가족을 납치했다며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 검사입니다”라고 사칭하는 전화, 콜센터 직원을 사칭해 본인인증을 위해 필요하다며 카드 비밀번호 앞 두 자리를 입력하라는 등의 보이스피싱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은 없다. 금융당국도 다양한 사례의 보이스피싱 유형을 전파하고 침착하게 대응해 예방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막상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으면 상대가 위기감을 조장해 당황하게 되고 쉽게 사기를 당한다. 이런 사기에는 피해를 보전받기도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을 위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점이 반갑다. 이번 개정안은 통장협박을 당한 경우 신속한 구제가 가능하도록 해당 계좌가 피해 금액 인출에 이용된 계좌가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계좌 잔액 중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에 한해서만 지급정지 조치를 한 것이다.

또한, 간편송금과 관련한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해서도 전자금융업자가 실시간으로 금융사에 금융거래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 최종 수취계좌에 대해 신속한 지급정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당장 통장협박·간편송금 관련 보이스피싱에 대해 피해자가 대응할 여력이 생기는 셈이다. 이처럼 금융당국과 국회가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위해 더 많은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단순히 피해 예방을 독려하는 데 그치지 말고 더 이상 피해자들이 늘어나지 않는, 범죄 자체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입법과 정책적 대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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