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미술품 물납제 활성화엔 “공신력 있는 심의위원회 필수” [스페셜리포트]

입력 2023-07-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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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피카소미술관. 1973년 피카소가 사망하자 유족이 거액의 상속세를 3500여 점의 피카소 작품으로 대신 납부하면서 건립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공신력 있는 정부 심의기구인 ‘부처간 국가예술문화재 보존 심의위원회(Commission interministérielled’agrément pour la conservation du patrimoine artistique national)‘, 약칭 대물변제위원회(commission des dations)에서 물납 허용 여부를 심사한다. (피카소미술관)
미술품 물납제는 상속세를 부과받은 상속인의 신청으로 그 절차가 시작된다. 관할 세무서에 현금 대신 보유 미술품을 상속세로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직접 감정가를 기재해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제출된 서류 속 감정가가 적정한지 검증하는 것이다. 국세청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 서류 접수 사실을 2주 이내에 통보하고, 관련 정보를 이관받은 문체부는 심의위원을 지정해 제출된 감정가가 적정하게 책정됐는지,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충분한지 등을 3~4개월에 걸쳐 판단하게 된다.

미술계에서는 바로 이 시점에서 ‘공신력 있는 심의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문체부는 상설 심의위원회를 두지 않고 물납 신청이 통보될 때마다 적절한 심의위원을 개별적으로 섭외한다는 방침이다.

9일 문체부 관계자는 "감정평가 신청이 들어오면 그때 분야에 맞는 전문가를 심의위원으로 구성하는 방향”이라면서 “아직까지 관할 세무서로부터 통보받은 내용이 없기 때문에 심의위원회를 구성해보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법을 시행한지 6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사이 누군가 돌아가셔서 상속세까지 결정되는 등의 요건에 딱 맞는 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반면 미술계는 ‘시행 초기’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짚는다. 도입 이전부터 제도 정착의 핵심으로 손꼽힌 ‘공신력 있는 심의위원회’가 제대로 구성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주장이다.

물납제 법제화에 수년간 힘을 기울인 이범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은 "한평생 그림만 그렸지만 생전에 작품을 많이 판매해 보지는 못한 무명작가일 경우, 그 미술품의 가치평가를 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면서 “그런 작가의 작품까지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미술품 물납제에 해당하는 경우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인이 된 백남준, 김환기처럼 저명한 작가는 작품의 거래 이력이나 판매가격 등 유통정보가 명확히 남아있는 만큼 가치평가의 근거를 찾기 쉽지만, 문제는 그 정도 위상으로 평가받는 작가가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법제도 활성화를 위해서는 “’진위 여부’와 ‘작품 가격’, 적어도 이 두 가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심의위원회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거쳐 민간 감정기구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를 설립한 정준모 대표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정 대표는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의 진위여부를 두고 국립현대미술관과 천 화백 유족이 맞섰던 1991년 사례를 들면서 “당시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이 진품이라고 주장해도 사람들은 믿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술품 진위여부나 가치평가에 대한 공신력을 인정받는 기관은 부족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정 대표는 “앞으로 물납 신청되는 미술품은 중국 도자기일 수도 있고, 고려 불상일 수도 있어 종류가 워낙 다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가 차원에서 주도하는 공신력 있는 상설 심의위원회를 결성해 해당 미술품을 어떤 소위에 할당할 것인지, 어떤 정통한 전문가에게 심의를 맡길 것인지 배분한 뒤 최종 가치를 결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또 이 같은 방식이 "현재 영국, 프랑스 등 외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체계”라는 점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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