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물가 안정, 기업 옥죄기보다 ‘장기 대책’ 필요

입력 2023-06-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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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예지 유통바이오부 기자 (구예지 기자(sunrise@))

정부가 제분업체들에게 밀가루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추경호 부총리의 라면값 인하 발언 이후 물가를 낮추기 위해 기업을 또 한 번 직접 압박했다. 윤석열 정부 정책에는 기업을 옥죄여 물건 가격이 떨어지면 팍팍한 시민 살림살이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인식이 녹아 있다. 경제 안정이라는 의무가 있는 정부 입장에서 시민 살림살이에 필요한 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정부가 기업에게 가격 인하를 종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점에서 문제다.

물가를 인위적으로 낮추면 단기간엔 도움이 된다. 당장 물건을 살 때 돈이 덜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요구대로 가격을 낮추면 기업은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기업은 이를 보전하기 위해 비용을 줄이려고 할 것이고, 가장 줄이기 쉬운 건 인건비다. 사람을 해고하는 것이다. 일자리가 줄면 수입이 없어져 살림살이는 팍팍해진다. 제품에 들어가는 재료의 품질을 낮출 경우 사람들의 건강이 해를 끼칠 수도 있다. 또 정부의 가격 인하 요구가 사라져 한 번에 물건 값이 크게 오를 경우에 입을 타격도 고려해야 한다.

부작용이 생기는 방법으로 눈앞의 문제만 해결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소득 상승률보다 물가 상승률이 높은 것이 문제이고, 고물가는 저소득층에 먼저 타격을 준다. 먹거리 소비 비중이 큰 저소득층에 체감 물가 상승폭은 더 큰 부담이다. 물가 상승에 따른 타격이 큰 저소득층 대상의 정책부터 나와야 한다. 생계급여를 늘리거나, 근로장려금 지급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소득 자체가 안정적일 수 있게 각종 일자리 확대 정책을 펼 수도 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박정희 정부는 강압적으로 품목별 가격 관리에 나섰고,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이명박 정부도 소위 ‘엠비(MB) 물가 품목’을 지정해 관리했다. 단기간엔 성공했지만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를 낳았다. 정부의 인위적인 물가 개입은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높은 물가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를 뒷받침할 소득이 따라주지 않아서다. 피해는 저소득층에서 가장 크다. 저소득‧취약계층을 지원하면 이들의 삶도 좋아지지만, 나아가 이들의 가처분소득이 늘어 기업 생산활동과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된다. 근시안적인 정책이 아니라 구조를 보는 해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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