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전설’ 키신저 “3차 세계대전 5~10년 안에 일어날 수도”

입력 2023-05-1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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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생일 앞두고 이코노미스트와 8시간 인터뷰
“세계 1차대전 직전과 비슷한 상황”
“미국과 중국 갈등, 대화로 풀 수 있어”
실용적 외교 접근 거듭 강조...“인권이 정책 중심이 돼선 안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19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포럼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베이징/신화뉴시스

미국 외교 원로 헨리 키신저(99)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미국과 중국의 대립으로 제3차 세계대전이 5~10년 내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공존을 위해서는 실용적으로 접근할 것을 당부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17일(현지시간) 보도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양측 모두 상대가 전략적 위험이라고 확신한다"면서 "우리는 강대국 간 대치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그 후임 제럴드 포드 대통령 정권 당시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을 지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정부 외교 고문과 특사 등을 역임했다. 특히 닉슨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했다.

오는 27일로 100세를 맞이하는 고령에도 국제 현안에 대한 의견을 활발하게 내놓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키신저는 8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미·중 간의 경쟁이 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현재 국제 정세가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에 있다고 진단했다. 전 세계적으로 힘의 균형과 전쟁 기술 발전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고, 또한 이것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변화하고 있어 국가가 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 원칙을 만들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미국과 중국 어느 쪽도 정치적 양보를 할 여지가 크지 않고 평형을 깨뜨리는 어떤 일이라도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키신저가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다는 이유에서 전쟁을 옹호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키신저는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13명에 달하는 친인척이 목숨을 잃은 것을 목격한 후 파멸적인 갈등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냉철한 외교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인류의 운명은 미국과 중국이 잘 지낼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면서 "인공지능(AI)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그 길을 찾아야 하는데 5~10년밖에 남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키신저는 전쟁을 피하기 위한 출발점은 점점 커지는 중국의 불안을 분석하는 것에 있다고 지적했다. 혹자는 그가 중국에 우회적이라고 평가한다. 키신저는 "중국 대다수 정치인이 미국이 하락세에 있다고 믿고 있으며, 따라서 역사적 흐름에 따라 중국이 우리를(미국을) 대체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중국 정치인들의 믿음은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키신저는 "중국 지도부로선 신흥 강대국으로서 당연히 특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 "이에 미국이 결코 중국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을 믿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중국 정치인들의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중국의 감정을 잘못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판도를 뒤엎으려 세계를 지배하고 싶어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이는 오해라고 주장한다. 키신저는 "중국은 초강대국으로 도약하고 싶을 뿐 지배하는 걸 원치 않는다"며 "중국은 히틀러식 의미에서 세계 지배를 추구하지 않으며, 지배는 중국이 세계를 보는 관점에서 벗어난 발상이다"라고 강조했다.

키신저는 나치 시절 독일은 히틀러때문에 전쟁이 필요했지만, 중국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체제 자체가 마르크스주의보다 유교에 더 가깝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유교는 중국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국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을 가지고, 그들의 성취에 대해 존경받도록 가르친다"면서 "군사력과 기술 모두 우위에 있다면 중국의 문화나 마르크스주의를 타국에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현재 나타난 지정학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양국 모두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강제로 대만을 병합하려 든다면 본토의 경제를 희생하게 되고, 세계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중 양국이 대만에 관한 입장을 근본적으로 유지하되, 미국은 병력 배치에 신중을 기하고 대만 독립을 지원한다는 의심을 사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키신저는 미국과 중국이 대화해야 할 중요한 분야 중 하나로 인공지능(AI)을 꼽았다. AI를 지금에 와서 폐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양국이 핵 군축처럼 AI 군사 능력에 대한 억지력을 증강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기술의 영향과 관련해 교류를 시작하고 군축을 위한 걸음마를 떼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해선 실용주의를 거듭 강조했다. 미국이 외국 정치에 개입할 때마다 세계를 자유·민주·자본주의 사회로 만들려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도덕적 원칙이 이익에 너무 자주 앞서는 문제가 발생해왔다고 지적했다.

키신저는 "인권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정책 중심에 인권을 두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그것들을 강요하거나 그것이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키신저는 인도의 예시를 들며 다자간 구조에 메이기보다는 현안별로 맞춤형 동맹을 맺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유럽, 중국, 인도가 합류할 수 있는 원칙에 기반을 둔 세계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며 "그 실용성을 본다면 끝이 좋을 수도 있고, 최소한 재앙 없이 끝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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