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세이] 결혼은 손해, 이익은 딱히….

입력 2023-04-30 06:00수정 2023-05-02 14:15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주최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 대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저출산 문제를 주제로 한 연구의 관점이 ‘사회’에서 ‘개인’으로 옮겨간 건 최근이다. 사회 관점의 연구는 주로 수도권 쏠림에 기인한 취업난과 주거난, 보육시설 부족 등 구조적 문제에 집중한다. 반면, 개인 관점의 연구는 결혼·출산 장애요인, 특히 결혼·출산 기회비용에 집중한다. 저출산의 배경은 사회와 개인 모두에 있다. 따라서 개인에 집중한 연구가 느는 건 긍정적이다. 다만, 기회비용 차원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처방적 연구는 부족하다.

구조적 문제는 차치하고 기회비용 측면에서 결혼·출산 지원정책을 만든다면 그 수단은 결혼·출산으로 발생하는 손실을 최소화하거나, 결혼·출산의 효용을 기회비용을 상쇄할 정도로 높이는 방향이 돼야 할 거다.

먼저 기회비용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까.

결혼·출산의 ‘실질적 기회비용’은 출산·육아를 이유로 한 고용상 불이익과 경력단절, 정통적 성역할 고착화에 따른 육아·가사 독박, 가족 중심 생활에 따른 개인 생활 제약, 양육·교육비용 부담 등이 있을 거다. 그런데 이런 실질적 기회비용은 추세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일·가정 균형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 확대·신설로 출산·육아를 이유로 한 고용상 성차별은 줄고 남성의 육아·가사 참여는 늘고 있다. 양육·교육비용 지원은 최근 10여 년간 급격히 팽창했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매년 떨어진다. 결국 실질적 기회비용을 낮추는 게 전부는 아니란 의미다.

다른 차원의 기회비용은 ‘인지적 기회비용’이다. 인지적 기회비용은 갈수록 높아진다. 일부 극단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남녀가 나뉘어 ‘결혼은 우리에게 손해라’며 싸운다. 이들에게 결혼은 ‘한남(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속어)’ 만나 독박 육아·가사 시달리는 길, 시부모에 노예로 팔리는 길, 과거 세탁해 ‘취집(취업+시집)’ 온 배우자를 위해 ‘돈 버는 기계’ 되는 길이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신념체계를 공유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신념에 더 강하게 확신한다.

커뮤니티를 벗어나면 온갖 미디어가 편견과 혐오를 조장한다. 쏟아지는 결혼·육아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결혼·출산은 할 짓이 못 된다. 결혼은 불행이고, 육아는 지옥이다. 청소년기 임신·출산한 부모들이 출연하는 한 프로그램은 ‘폐지 요구’에 시달리면서도 자극성을 높여간다.

인지적 기회비용을 정책적으로 낮추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유해 커뮤니티 제재와 미디어 교육 강화, 오프라인 커뮤니티 활성화, 방송 프로그램 공익성 강화 등이 방법이겠지만, 이 역할을 정부가 하는 건 독재다. 사회 전반의 의식수준 향상과 자정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결혼·출산의 효용을 기회비용을 상쇄할 만큼 높이는 거다.

한국 사회에선 결혼 후 아이를 낳는 게 보통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결혼 지원정책은 출산 지원정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행 결혼·출산 지원정책 대부분은 수혜대상이 미혼 청년과 유자녀 신혼부부다. 무자녀 신혼부부를 위한 정책은 거의 없다. 유자녀 신혼부부에 대한 지원은 ‘추가 출산’을 지원하는 측면으로 이해되지만, 미혼 청년에 대한 지원은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 청년도약계좌, 청년 특별공급 등 최근 쏟아진 청년 정책에선 정치만 보인다. 청년들이 현금을 모으고 안정적인 주거를 마련하면 ‘기회비용을 따지지 않고’ 결혼을 희망할 거라 여기는 건가.

청년들이 ‘화려한 싱글’이 되길 바라는 게 아니라면, 그리고 돈을 쓴 만큼 효과를 보겠다면 미혼 청년에 대한 지원정책들을 ‘결혼 조건부’로 돌릴 필요가 있다.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제안한 헝가리형 지원정책을 비수도권에 도입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결혼이 ‘이익’이 되게끔 하는 것이다. 지금은 기회비용만 존재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