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마뜩잖은 ‘천원의 아침밥’ 사업…정부 정책이라면 비용도 정부가 부담해야
물론 도시락에는 추억만 담겨 있지 않다. 도시락 반찬 통에는 그 집의 형편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가슴 아픈 기억을 가진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도시락 반찬을 놓고 일부 아이들이 따돌림을 당하거나, 부모님이 바쁘거나 챙겨줄 여유가 없어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학교급식이 보편화되면서 이러한 교실의 풍경은 사라졌고, MZ세대의 급식과 관련된 추억으로 대체되었다.
10년 전 급식 예산 지원을 둘러싸고 촉발되었던 친환경 무상급식 논쟁은 모든 학생들이 질 좋은 급식을 공교육의 틀 안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제 최소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먹는 점심식사에서 빈부의 격차는 없어졌다. 모든 학생들이 점심 한 끼만큼은 육류를 포함한 균형 잡힌 식사를 한다. 지난 20년간 시행된 여러 복지정책 중에서 예산 대비 정책 효과가 가장 좋은 프로그램의 하나로 무상급식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뿐인가. 우리의 급식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지고 있다. 철제 식판에 여러 음식이 고루 담긴 사진들이 한류의 물결을 타고 ‘K-급식’으로 명명될 모양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점심밥을 공짜로 먹던 학생들은 대학에 와서 제법 큰 값을 치르고 ‘학식’을 먹어야 한다. 최근의 물가 상승으로 가장 기본적인 학식의 가격도 5000원을 넘어서고 있다. 학식의 질도 고등학교 때보다 못하다. 교육청은 각급 학교에 인건비와 관리비를 따로 지원하면서 식료품 구입비로 학생 1인당 4000∼5000원을 지급한다. 대학의 학식 5000∼6000원에는 식재료비뿐 아니라 인건비, 관리비, 위탁업체의 이윤도 포함되어 있으니, 급식의 질이 고등학교 때보다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캠퍼스에서 학생들의 식사 장소로 가장 붐비는 곳이 편의점이다. 라면이나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대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최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아침을 건너뛰는 많은 대학생들에게 소박하지만 따뜻한 밥을 먹이고, 쌀 소비도 촉진한다는 부수적 효과도 챙길 수 있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대학생들의 큰 호응을 받으면서 정부와 여당 역시 무척이나 고무된 것 같다. 최근 서울시도 1000원을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더 많은 대학이 ‘천원의 아침밥’ 사업에 나서기를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달리 대학의 입장은 마뜩하지 않다. 5000원 학식에서 정부 지원은 달랑 1000원. 학생이 1000원을 부담하고, 나머지 3000원은 대학이 부담해야 한다. 서울시에서 1인당 1000원을 추가 지원한다 해도 대학이 가장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2009년 이후 등록금이 동결되어 극심한 재정난에 허덕이는 사립대학들이 선뜻 ‘천원의 아침식사’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고작 1000원으로 생색내는 정부를 보면,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판촉행사를 하며 비용의 대부분을 가맹점에 떠넘기는 모양새와 비슷하지 않은가?
정부의 정책이라면 비용도 정부가 부담하는 것이 상식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대학생들에게 하루 밥 한 끼를 먹이는 것은 어떠한가? 고등학교 때처럼 친환경 무상급식이면 가장 좋겠지만, 대학 구내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자영업자들의 입장도 있으니 교내에서 사용 가능한 쿠폰(전자바우처)을 지급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