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해진 우리사주조합]②지배구조·M&A 캐스팅보트·백기사까지, 우리사주의 ‘파워’

입력 2023-02-16 08:09수정 2023-02-1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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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

#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내정자.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노동조합이다. 임 내정자는 “직원들과 노조의 상처와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면서 “임기 동안 그 누구보다도 우리금융 직원들을 사랑할 것이고, 그 누구보다도 직원들을 사랑했던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관치 금융’이라는 안팎의 곱지 않은 시선을 누그러뜨리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우리금융지주의 최대주주는 우리사주조합이다. 최대주주인 우리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율 5.55%와 특수관계인인 우리은행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율 3.93%를 합한 우리사주의 지분율은 9.48%에 달한다.

# KB금융그룹 노동조합협의회는 지난달 30일 KB금융그룹 이사회 사무국에 임경종 씨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는 내용의 주주제안서와 위임장을 전달했다. 노조는 “임 후보는 은행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실무 경험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해외사업부문 정상화를 위해 KB부코핀은행의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고 현지 영업력을 키워야 하는 점을 고려할 때 최적의 후보자”라고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KB금융 노조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노조 추천 또는 우리사주조합 추천 등의 형태로 다섯 차례에 걸쳐 사외이사 후보를 내세웠지만, 모두 주주총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직원들이 우리사주조합이란 이름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막강한 지분을 앞세워 최고경영자(CEO) 선임에 간섭하거나 사외이사 자리를 달라고 한다. 때론 기업 인수합병(M&A)과정에서 ‘캐스팅 보트(casting vote·최종 결정권)’ 역할도 한다. 우리사주 지분을 놓고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간의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지는가 하면, 우리사주가 M&A에 참여해 경영에 뛰어드는 시도도 벌어진다. 기업과 우리사주의 건전한 동반자 관계는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우리사주의 과도한 경영 개입은 기업의 존립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우리사주가 근로자들을 경영 파트너로 인정하고 지속가능 경영을 추구하는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

우리 허락받고 CEO 선임해라

임종룡 내정자와 노조(우리시주)의 갈등은 잠시 봉합된 분위기다. 하지만 금융권 구조조정의 목소리가 큰 상황에서 지배구조 및 사업 구조개편, 임금 및 단체협상 등의 과정에서 맞부딪칠 가능성이 있다. 박봉수 우리금융 노조위원장은 9일 임 내정자와 만남에서 “우리금융그룹의 모든 임직원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 달라”면서도 “지배구조 변화 시점의 틈을 노려 조직이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신경 써줄 것”을 당부했다. 언제든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가시 돋친 말이다.

사외이사를 추천한 KB금융그룹 노조는 주주제안을 통해 ‘최근 5년 이내 행정부 등에서 상시 종사한 기간이 1년 이상인 자는 3년 동안 대표이사(회장) 선임을 금지한다’는 내용으로 정관을 고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른바 ‘관치금융’, ‘낙하산’ 논란을 사전에 막기 위한 장치라는 설명이다.

우리사주는 금융권에서 노조 힘의 뿌리다. 작년 말 은행권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에서는 우리사주조합장이 나란히 노조위원장으로 출마했다. 이들은 우리사주 무이자 대출 조건을 내걸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노조 스스로 ‘공정’과 ‘관치’를 외치면서 본인들에게는 관대하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사이에서는 이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권한이 강화되고 있다. SK의 경우 2021년 이사회 산하 인사위원회를 신설하고 대표이사를 평가하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사내이사 1명과 사외이사 2명으로 구성되는 인사위원회는 대표이사 선임과 평가를 맡는다. 신규 대표이사를 선임할 때 인사위원회가 최종 후보를 확정할 뿐 아니라 임기 중 대표이사 교체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할 수 있는 권한도 갖는다. 이후 상당수 기업들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변화에 동참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 총수와 CEO에 집중됐던 인사, 전략 등 경영권의 핵심적인 부분까지 이사회로 일정 부분 이전되고 있다”면서 “갈수록 커지는 우리사주의 건전한 목소리에 기업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M&A서도 우리사주조합 목소리 커질 듯

지난해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확정했다. 하지만 앞길은 험난하다. 1291%(2022년 9월 말 기준)에 달하는 부채 등 경영 정상화도 문제지만, 강성으로 꼽히는 대우조선 노조와의 화학적 결합도 난제다. 우리사주 대부분이 노조다. 한화는 2008년 대우조선 인수 시도 당시 노조가 실사에 반대해 진통을 겪은 바 있다. 대우조선 노조는 한화가 인수 추진 사실을 밝힌 이후인 지난해 10월 전 직원 고용을 유지하고 현 경영진 임기 보장을 요구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화와 산은이 맺은 인수 계약에는 대우조선 등기 임원 전원이 사임서를 제출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M&A 시장에서 우리사주의 목소리는 더 자주 들릴 전망이다. 캐스팅보트나 백기사 등 형태는 다양할 전망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에는 사모펀드(PEF)들이 투자했던 기업을 성공적으로 매각하는 데 집중하는 등 시장 상황을 보며 몸을 사렸다”며 “올해는 대형 사모펀드들에 충분한 ‘드라이 파우더(미집행 약정액)’가 있고, 신규로 대규모 펀드 조성 사업을 시작한 곳도 많다”고 했다.

KSS해운의 우리사주조합은 창업주인 박종규 고문이 보유하던 주식을 출연해 결성했다. 지분율은 11.91%로 박 고문에 이어 2대 주주다. 은퇴한 박 고문의 보유 지분이 우리사주조합이나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아닌 시장에 흘러나올 경우 적대적 M&A에 노출될 수 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회사 측은 ‘우리사주 갖기 운동’ 등 내부 운동을 통해 보유 지분율을 지속해서 끌어올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

현대상선(현 HMM)은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M&A 가능성이 불거진 2004년 우리사주조합제도를 통해 자사주 300만 주를 매입해 경영권 방어에 활용하기 했다. KT&G 우리사주조합은 2006년 ‘기업사냥꾼’으로 알려진 미국 투자자 칼 아이칸의 적대적 M&A가 시도되자 당시 경영진에 대한 지지입장을 밝혔다. 당시 KT&G 우리사주의 지분율은 5.7%였다.

직접 참여한 사례도 있다. 2004년 대우종합기계(현 현대두산인프라코어) 노조는 우리사주를 통해 대우종합기계의 지분을 인수하려고 했다. 당시 우리사주는 팬택 계열 컨소시엄과 공동입찰 참여를 선언하며 강력한 인수 후보로 떠올랐다. 2006년 대우건설 매각 당시에는 우리사주가 프라임그룹 컨소시엄과 공동으로 입찰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어 2009년에는 대우건설 노조가 우리사주와 산업은행 사모투자펀드가 전략적 컨소시엄을 구성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지분을 인수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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