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부자 탄 네팔 항공기 사고 ‘30년來 최악’…10년에 19번이나 참사 난 이유 [이슈크래커]

입력 2023-01-16 17:32수정 2023-01-1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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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항공기 추락 현장서 수색 작업 벌이는 구조대원(로이터/연합뉴스)

네팔 중부 포카라에서 72명을 태운 네팔 예티 항공기가 추락했습니다. 이날 사고로 68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 가운데, 한국인 부자(父子)도 탑승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는데요.

애초 네팔은 항공 사고가 잦은 지역으로 꼽힙니다. 지난 10년간 19번이나 크고, 작은 항공기 추락 사고가 있었죠. 이번처럼 단일 사고로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것은 1992년 이후 31년 만에 처음입니다. 원인은 다양합니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노후된 항공, 열악한 공항 시설이 참사를 키우고 있습니다. 안전을 등한시하는 네팔 의회의 ‘권력 집착’도 한 이유로 꼽히죠.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세계의 지붕’으로 향합니다. 전문 산악인들도 혀를 내두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이죠. 이유가 뭘까요.

사고 원인ㆍ사망자 명단 아직…항공기 잔해 산비탈에 흩어져 있어 수색 난항

15일(현지시간) 오전 10시 30분께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출발해 카스키 지역 휴양도시 포카라 인근 공항으로 향하던 예티 항공 소속 ATR72-500이 공항 근처 강에 추락했습니다. 사고 항공기에는 승무원 4명과 승객 68명이 탑승했는데요. 그중 외국인 탑승자는 한국인 2명을 포함해 총 15명으로 알려졌습니다. 항공기는 이륙 18분 후 마지막 연락을 끝으로 추락했는데요. 추락을 목격한 포카라 지역 주민은 AP통신의 영상부문 계열사 APTN과 인터뷰에서 “비행기가 갑자기 기울었다. 전투기가 미사일을 피하는 모습 같았다”며 “비행기가 딱 봐도 우리 집이나 그 근처로 떨어질 것 같아서 충격받았다. 저게 떨어져서 오늘 모든 게 끝장나는구나 싶었다”고 전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포카라 인근은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129㎞ 떨어져 있습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서킷 관문으로 인기 있는 하이킹 트레일의 베이스캠프로 통하죠. 급격한 기후 변화와 험악한 지형으로 평소 항공기 사고가 빈발하는 지역이지만, 사고 당일 날씨는 맑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눕 조시 포카라 공항 대변인은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비행기는 1만2500피트 상공에서 순항했으며 정상적으로 하강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정확한 사망자 명단과 기체 추락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조종 미숙, 기체 결함, 기상 악화 등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네팔 정부는 군인과 경찰 등으로 구성된 구조인력을 동원해 실종자 4명 수색에 나서는 한편 5명으로 구성된 사고 원인 조사단을 꾸렸습니다. 또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블랙박스를 찾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추락한 항공기를 지켜보는 포카라 현지인들(AP/뉴시스)

1년에 한 번씩 항공 사고…변덕스러운 날씨·노후된 항공기 등 원인

연간 3만 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트레킹과 사찰 순례를 위해 네팔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高)봉 에베레스트산과 히말라야산맥은 네팔의 가장 큰 관광 자원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네팔을 방문하는 이유인 험준한 산맥은 항공 사고가 빈발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네팔에는 에베레스트를 포함해 세계 14대 최고봉 중 8개 산이 있습니다. AFP통신은 “히말라야 산악 국가인 네팔은 정확한 일기 예보를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고, 산에서는 날씨가 빠르게 변해 비행 조건이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협곡에 자리한 좁고 짧은 활주로는 숙련된 조종사들도 이·착륙에 애먹는 구간입니다. 세계 최악의 공항으로 꼽히는 텐징-힐러리 공항 역시 네팔의 히말라야산맥에 있습니다.

실제로 관련 사고는 꾸준히 있어 왔습니다. 네팔에서 최다 희생자를 낸 1992년 사고 때는 파키스탄 국제항공 여객기가 카트만두 상공에서 추락해 167명이 숨졌습니다. 지난해 5월에는 네팔 머스탱 산악 지역에서 타라 항공 여객기가 1만4500피트 상공에서 추락해 승무원과 승객 22명이 전원 사망했죠. 항공 안전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네팔에서 지난 10년간 19번의 비행기 추락 사고가 있었는데요. 그 가운데 10번은 치명적 결과를 남겼습니다.

비행기가 사고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번에 추락한 항공기는 ‘ATR72-500’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저비용 항공사에서 자주 사용되는 트윈 프로펠러 터보제트입니다. 가디언은 비행 추적 데이터를 인용해 이번 사고를 일으킨 비행기가 15년 된 기체에 “믿을 수 없는 데이터가 포함된 오래된 트랜스폰더(항공기용 무전기)가 장착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기령(비행기 나이)이 20년 이상인 항공기를 ‘노후 항공기’로 분류하는데요. 이 기준에 따르면 이번 사고 기체가 특별히 낡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유럽 항공사인 에어버스와 리어나도 공동제휴사인 ATR에서 기체를 만들었는데, 좋은 평판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만에서는 2014년 7월과 2015년 2월 ATR-72 두 대가 추락 사고를 낸 적이 있습니다. 각각 48명, 43명의 사망자를 낸 대형 참사였습니다. 이에 두 번째 충돌 이후 대만 당국은 일시적으로 ‘ATR-72’의 입항을 거절했었죠. 다만 이때 사고는 각각 악천후와 기장의 실수가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AP/뉴시스)

잇딴 참사에도 법 안 바꾸는 네팔 의회…“공항 관료들의 권력 집착”

타고난 자연환경이 위험한데, 네팔에서는 항공에 대한 안전 유지 및 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유럽위원회(EC)는 2012년 시타 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로 영국인 8명이 사망한 후 2013년부터 네팔 항공사들의 유럽 취항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노나 데프레즈 네팔 EC 대사는 지난해 8월 3일 “네팔 민간항공청(CAAN) 분리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네팔 항공사들이 ‘유럽 취항 금지 리스트’에서 제외되는 선결 조건”이라고 말했는데요.

CAAN 분리 법안이란 항공 서비스 제공부터 운영, 규제까지 모두 담당하던 기존 CAAN의 권한을 분담시키는 법입니다. 서비스 제공자이자 규제 기관이어서 안전 관리 감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CAAN을 분리해 안전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게 하자는 취지죠. 2009년 네팔 정부는 UN 항공 감시 단체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CAAN을 두 개 기관으로 분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약 13년간 지켜지지 않았죠.

결국 ICAO는 지난해 5월 탑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지 약 3개월 후인 8월 3일, 네팔 정부에 CAAN 분할을 공식 권고했습니다. 관광 산업 의존도가 높은 만큼, 네팔에게도 이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네팔 상원에서 관련 내용을 다룬 ‘네팔 민간항공청법’을 통과시킨 후 법안 통과에는 진척이 없습니다. 하원에서 관련 법안이 계류된 후, 지난해 10월 네팔 하원이 한차례 해산되는 상황까지 겪으며 CAAN 분리 법안 통과는 흐지부지되고 말았죠.

네팔정책연구소(NIPoRe)의 공동설립자이자 카트만두 트리부반 대학교 국제관계외교학과 교수 산토시 샤르마 푸델은 미 외교 전문매체 디플로맷을 통해 “일부 항공사 사무직들과 외항사 운영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아 관련 법 통과에 진척이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입찰과 감독을 담당하던 공항 관료들이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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