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택 경제칼럼니스트
가계나 기업은 물가상승률과 인플레의 지속기간에 대해 정확하게 예상하지 못한 채 소비하거나 투자한다. 만약 예상과 다르게 물가가 상승하면 가계와 기업은 적응하는 데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물가상승률에 대한 예측이 빗나가면 갈수록 적응 비용은 많게 된다. 또한 인플레의 변동성, 즉 물가상승률이 월마다 또는 분기마다 크게 변동한다면 국민경제 전체가 적응하는 데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전 국민이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인플레는 소비자 측면에서 볼 때 명목소득의 구매력을 감소시킨다. 일단 물가가 상승하면 소비자는 기존 명목소득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 이전보다 적어진다. 실질소득은 물가가 오른 만큼 감소하며 생활 수준은 떨어지게 된다. 물론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현상은 소득이 물가상승률만큼 상승한다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만큼 즉각 임금을 인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에너지(석유, 전기 등)나 식료품 등과 같은 생필품 가격이 상승할 때 구매력 상실에 따른 피해는 고소득층에 비해 저소득층이 더 크다. 저소득층은 대개 소득의 대부분을 식료품과 같은 필수 소비재를 구매하는 데 지출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플레 시기에는 현금성 자산(예·적금, 현금)을 보유한 사람도 해당 자산의 구매력 상실로 피해를 보게 된다. 화폐가 인플레로 인해 본연의 가치저장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이자가 충분하지 않다면 은행에 예금하기보다는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금이나 부동산에 투자할 것이다. 여유자금과 투자재원의 이동은 새로운 물가와 기대수익률에 의해 자원을 재분배시킨다.
또한 인플레는 경제의 생산구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이 인플레로 구매력이 감소함에 따라 외식보다는 꼭 필요한 필수소비재를 우선적으로 구매하게 된다면, 외식업계나 여행업계에 대한 수요는 감소한다. 이런 업계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격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수요는 줄고 해당 부문은 축소되며 심지어 구조조정을 겪게 된다.
시장경제에서 가격과 가격변동은 소비자의 수요형태와 기업의 생산 및 공급조건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가격은 수요에 비해 재화나 생산요소의 부족 또는 풍부함에 따라 결정된다. 이미 2021년부터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공급망 차질로 인해 생산요소의 비용이 상승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함께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인플레 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였다. 이러한 가격변화는 각 재화와 생산요소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신호를 시장에 전달한다. 이에 따라 각각의 경제주체는 소비, 생산 및 투자에 대한 계획과 결정을 수정하거나 조정해야 한다. 특히 기업은 인플레로 인해 추가적인 불확실성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식당은 물가가 오를 때마다 메뉴판을 바꿔야 하는데, 메뉴판을 교체하는 비용(메뉴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기업은 이러한 메뉴비용 외에도 물가상승에 따른 가격조정과 협상을 위해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플레는 채권자에게는 불리하게, 채무자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한다.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가계는 순채권자이고, 기업과 정부는 순채무자이다. 기업과 정부는 채권 투자자에게 인플레 이전에 약정한 이자만 지급하면 되지만, 채권에 투자한 가계는 인플레로 실질가치가 줄어든 명목이자만을 받게 된다. 채권자가 얻는 실질 이자수익은 감소하고, 채무자가 지급하는 실질 이자비용은 감소함으로써 이들 간에 불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진다. 이번 인플레는 금방 끝날 기세가 아니다. 자기가 채권자인지 채무자인지 분명하게 인지해야 험난한 인플레 시대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