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 금융 논란이 커진 건 김지완 BNK금융지주 전 회장이 자녀 부당 지원 의혹으로 조기 사임한 데 이어,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라임사태로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받아 연임이 불투명해진 탓이다.
검사 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최근 행보는 관치 금융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 원장은 지난 14일 8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불러모았다. 금감원장이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만난 것은 윤석헌 전 원장 때인 2019년 5월 이후 약 3년 6개월 만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이 원장은 “최고경영자(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 승계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후임자 물색 과정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모임의 배경에 대해 금감원은 ‘금융사 지배 구조에 대한 감독 활동’ 차원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금융사 인사철에 이사회 의장을 소집해 CEO에 대한 의견을 냈다는 건 ‘당국의 지시를 따르라’는 공개적인 ‘경고’ 메시지로 보는 게 더 맞다. 임기가 만료되는 금융사 CEO 자리에 정부의 낙하산이 내려올 것이란 합리적인 의심이 팽배한 이유다.
특정 인사를 내려보내지는 못해도 연임은 막을 수는 있다는 당국의 메시지도 엿보인다. 이복현 원장은 라임사태로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회장을 향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취소 소송을 제기하지 말고 나가라”는 말을 돌려 했다는 게 금융권의 해석이다.
차기 회장 선출에 들어간 BNK금융지주와 손 회장의 연임이 불투명해진 우리금융의 수장 자리를 두고 이미 물밑경쟁은 치열하다. 우리금융의 경우,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등 관 출신 인사들이 거론된다. 임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 실장을 역임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우리금융 내부 출신으로는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지지를 밝혔던 이들도 거론된다.
BNK 회장 후보로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이들에 대해 금융권에선 “올드보이 중에서도 올드보이들“이라며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내년 1월 임기를 마치는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의 후임에도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가 유력시된다. 거론되는 인사는 정은보 전 금감원장이다.
은행은 주인이 없는 회사다. 특정 대주주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수많은 안전장치를 해 놨다. 그 덕에 지배구조는 투명해졌지만, ‘관치’라는 ‘외풍’에 항상 흔들려 왔다.
최근 수년간 주요 금융그룹 CEO들은 오너처럼 주인의식을 기반으로 경영에 나서 실적을 끌어 올렸다. 그 덕에 연임에도 성공했다. 강력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그룹 성장을 이끌었단 점에서 금융 선진화의 흐름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반면 금융사 CEO로 내려온 낙하산 인사들은 비전확립과 경영 혁신보다 정부와 정치권 동향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자리를 내어준 데 대한 보은 차원이다. 훗날 자리보전을 위해서도 권력의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 살피는 게 중요하다.
내년은 올해보다 더 혹독한 글로벌 경기침체가 예상된다. 금융그룹은 디지털금융, 글로벌 확장 등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뛰어야 한다. 본인의 안위보다는 주인의식을 가진 CEO들의 역할이 필요한 때다.
권오현 삼성전자 고문은 자신이 쓴 ‘초격차’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건희 회장의 뚝심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한국 반도체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속적인 투자를 결정했던 그의 기업가 정신이 현재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너경영의 장점을 잘 표현한 설명이다.
권 고문은 전문경영인 특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그들은 당장 눈앞에 이익이 생기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