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오늘도 평화로운 의사당로1길

입력 2022-10-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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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환 정치경제부장

이러다 금융위기 또 올까 남들 다 걱정이어도, 옆 나라 핵전쟁 터질까 온 세계가 노심초사여도 어쩔티비. 삼성이 반도체 경쟁에서 밀려나도, 현대차가 미국에서 전기차 못 팔아도 알빠노(내 알바 아님).

머리 위엔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금융과 실물에 동시에 밀려드는 경제위기에 잠 못 드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여의도에서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듣는 것은 드문 일이다. 현직 대통령의 비속어와 외교참사, 전직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 논란으로 시작한 국정감사는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을 둘러싼 친일 논쟁, 감사원장 문자 공방으로 날을 샐 뿐 정작 해야 할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사실 국회에 큰 기대를 거는 것도 아니다. 지원은 고사하고 기업과 민생의 발목이나 잡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올해도 평화로운 우리 국회는 이 작은 소망조차 외면했다. 정책국감을 한다면서 아무 관련 없는 기업인을 불러 망신을 주거나 질문 한 번 하지 않고 병풍으로 앉혀 놓는 몹쓸 짓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라떼 시절 옛일을 하나 되새겨보자. 경제학자들에게 신업혁명 종주국인 영국의 제조업이 어쩌다 망가졌는지를 물으면 "의회"라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동차산업은 영국 의회가 작정하고 망하게 만든 대표적인 산업으로 유명하다. 자동차를 발명한 나라는 독일, 자동차를 대중화한 나라는 미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반만 맞는 이야기다. 처음으로 자동차를 실용화한 나라는 증기 자동차를 발명한 영국이며, 이를 수많은 대중이 타고 다닌 나라 역시 영국이다.

독일의 칼 벤츠는 증기기관이 아닌 내연기관 자동차를 처음 발명했고, 미국 헨리 포드 역시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중화했다.

1826년 영국에서는 증기기관을 탑재한 28인승 자동차가 등장해 런던 시내와 인근 도시를 잇는 정기 노선 버스로 사용됐다. 벤츠가 내연기관 자동차를 처음 만들어냈을 때가 1885년이니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영국에 비해 60년 가까이 뒤쳐졌던 셈이다.

두 세대에 걸친 격차를 뒤집도록 허용한 장본인은 영국 의회였다. 최고 속력이 60km/h에 달해 마차보다 10배 넘게 빠른데다 수십명을 한 번에 태울 수 있는 증기 자동차가 등장하자 마부들은 생계를 위협받았다. 이들은 결국 파업을 벌였고, 그들의 표를 의식한 영국 의회는 그 유명한 '적기조례(The Locomotive Act)'를 만들어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수렁으로 밀어넣었다. 1861년 통과된 1차 적기조례는 자동차의 최고 속도를 시속 10마일(16 km/h), 시가지에서는 시속 5마일(8 km/h)로 제한했다. 5년 뒤에는 최고 속도를 교외 4마일(6 km/h), 시가지 2마일(3 km/h)로 더 강화했다. 그럼에도 자동차의 인기가 식지 않자 나중에는 "말과 마주친 자동차는 정지해야 한다"거나 "말을 놀라게 하는 연기나 증기를 내뿜어서는 안된다"는 등 말도 안되는 조항까지 만들었다.

의회가 앞장서서 자국의 첨단산업과 기업을 괴롭힌 수십년의 시간동안 자동차 후진국들이던 독일에선 벤츠가, 미국에선 포드가 등장해 산업혁명의 조상인 영국의 아성을 무너뜨려 나갔다.

19세기 라떼 이야기가 지금과 무슨 상관인지 불만이라면 당장 삼성전자가 반도체 세계 1위 자리를 대만 TSMC에 내줬다는 소식에 관심을 가져 보길 권한다. 반도체는 한국이 최고인줄 알았던 우리 자존심에 상처가 나고, 이러다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감까지 드는 이유는 국회와 무관하지 않다.

TSMC가 삼성을 누르고 반도체 선두주자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대만 정부의 기업 친화적 정책이 큰 힘을 발휘했다. 대만 정부는 TSMC에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해 15% 세액 공제와 함께 반도체 패키지 공정 비용의 40%를 지원했다. 반도체 인력 육성에 드는 비용에도 보조금 혜택을 줬다. 양국은 똑같이 반도체 산업을 '국가 핵심 전략산업'이라며 전폭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대만은 실천했고 한국은 말 뿐이었다.

국회에 첨단전략산업 시설투자 세액공제 확대, 인허가 신속 처리 등으로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는 반도체특별법이 발의된 것은 지난 8월이다. 두 달여 동안 낮잠을 자던 이 법은 아직 상임위 소위 심사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반도체특별법안에 먼지가 쌓여가는 사이 미국은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규제하기로 했다. 우리 기업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이라고는 해도, 기업이 가장 싫어한다는 불확실성이 커져간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우려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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