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지중해’, 도피로의 유혹

입력 2022-10-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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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요즘같이 만사 답답할 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밥벌이의 고단함도 세상 정보의 피로감도 훌훌 털고 그저 조용히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고 보니 중년의 남자들이 유독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프로그램을 애청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왜 아니겠는가? 삶의 고달픔과 무한경쟁의 피로감, 좌절을 맛본 후 어디론가 숨고 싶은 유혹을 느낄 테니 말이다. 사회가 파편화될수록 도피 유혹은 커져만 간다. 그럴 때면 영화 ‘지중해’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던 테마 음악이 마치 ‘먼 북소리’처럼 귓가에 들려온다.

영화 ‘지중해’가 개봉한 지는 꽤 오래됐다. 1992년에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면서 이탈리아 영화의 건재를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이탈리아 해군은 에게해의 작은 섬이 전략적 요충지라 판단해 병사를 파견한다. 그러나 그들을 섬에 내려다 준 배는 폭격으로 가라앉고 사령부와 실낱 같은 교신을 해온 무전기마저 고장이 나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진다. 처음엔 무인도인 줄 알았던 섬엔 지중해의 햇볕과 공기를 향유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주민들이 있었다. 독일군이 남자들을 모두 끌고 가는 바람에 이제 노인과 여자, 아이밖에 남지 않았다.

군인들은 이내 지중해의 천국 같은 환경에 슬며시 무장을 해제하고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며 전쟁 따윈 까맣게 잊어버린다. 덕분에 전쟁으로 하지 못했던 그들의 내면 욕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떤 이는 그림을 그리고, 또 누구는 수영을 즐기고, 다른 이는 바다 멍을 때리며 각자가 지상 낙원과 같은 이곳의 삶에 빠져 든다. 백사장에서 축구도 하지만 누군가는 이곳 처녀와 사랑을 시작한다.

이들의 평화는 영국군 경비행기가 마을에 불시착하면서 깨진다. 이탈리아는 더 이상 영국군과 적대 관계가 아니며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2년 전의 병사들이 아니다. 지중해 외딴 섬에서 진정한 삶과 인생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모두 다 각자의 길을 따라 떠나지만 세월이 흘러 모두 그 섬에 다시 모이게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지중해 푸른 바닷빛이 몹시도 그리운 요즈음이다.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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