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한글 창제와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의 개발

입력 2022-10-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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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동 기상청장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 글은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에 있는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이다. 우리나라 글자가 없어 한자를 빌려 쓰는 백성들을 위하여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우리만의 글자를 만들고자 한,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대왕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한글은 한자만으로 세상을 살아온 기득권 세력에 천시받는 등 널리 쓰임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 우수성과 독자성을 인정받아 훈민정음 해례본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과학에서도 한글과 같이 우리만의 독자적인 개발을 이룬 것이 있다. 근대 과학기술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기상 분야의 수치예보모델에서, 독자성과 우수성을 지닌 한국형 수치예보모델(KIM, Korean Integrated Model)을 개발한 것이다. 한국형수치예보모델 개발에는 한글 창제의 바탕이 그러했던 것처럼 국민을 우선에 두는 마음이 그 근본에 있다.

오늘날의 일기예보는 수치예보모델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로 상세하고 정밀한 예측을 요구받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기상선진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수십 년에 걸쳐 수치예보모델을 개발해 일기예보에 활용하고 있다. 그에 비해 근대 기상업무가 늦게 시작된 우리나라는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수치예보 업무를 위한 기반 작업을 시작했다. 1997년 일본 모델을 도입해 활용해 오다가 2010년부터는 영국 모델을 도입해 수치예보모델 업무에 활용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외국 모델은 우리나라의 기후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수정이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 자체 수치예보모델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돼, 2011년부터 2019년까지 9년에 걸쳐 자체적인 우리만의 모델 개발을 추진했고 2020년 4월부터 예보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개발 소식에 일부에서는 전 세계 1, 2위 모델인 유럽 중기예보센터나 영국의 모델을 활용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당장의 비용은 절약할 수 있겠으나, 날씨예보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과 도구를 외국에 전적으로 의존해 유사시에 자료가 제공되지 않으면 일기예보에서 시발되는 국가의 정책이나 안보에도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반면 자체 모델을 운영하면 이러한 문제점 해결은 물론, 예보관의 의견을 반영해 즉각적으로 모델을 수정해 개선할 수 있으므로 한반도 지역과 국민 수요에 맞는 맞춤형 예보가 가능하다.

예보에 활용된 지 2년여가 지난 지금,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의 성적표는 독자적인 수치예보모델을 운영하는 전 세계 9개국 중 중위권이다. 기상청에서 모델 개선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만큼, 끊임없는 노력으로 꾸준한 성장을 이어간다면 한글을 비롯해 가요, 영화, 드라마 등 K-문화가 세계에서 인정받고 널리 전파되고 있는 것처럼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KIM도 각국에서 쓰이는 날이 올 것이다.

10월 9일은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한글날로, 올해로 576돌을 맞이했다. 500년이 넘는 긴 시간을 넘어 한글의 독자성과 우수성, 그리고 국민을 위하는 마음을 이어받은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이 기상업무에 활용되기 시작한 4월 28일도 모두 함께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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