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흠 회계사
2만8000원으로 기업공개를 추진한 쏘카는 기관 수요예측 및 개인 청약에서 모두 흥행 실패를 하고 말았다. 공모가격을 대폭 낮춰 증시에 입성했지만, 상장 당일부터 주가 하락을 거듭해서 한 달 만에 공모가격 대비 40%나 빠지고 말았다.
모처럼 4000억 원대의 공모 규모를 자랑하는 2차전지 분리막 전문 생산기업인 더블유씨피도 청약에서 흥행 참패를 맛봤다. 기관투자자들 수요예측에서 경쟁률이 33.28대 1에 불과했고 개인 투자자 청약 경쟁률도 7대 1밖에 안 될 정도였다.
연 7%가 넘는 예상 배당률을 제시했던 KB스타리츠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KB금융그룹의 첫 상장 리츠 작품이고 높은 배당수익률에 기대감이 컸지만, 청약경쟁률은 2대 1에 불과했다.
공모주 시장이 이렇게 좋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스팩(SPAC, 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은 상장 건수가 매우 많다. 이번 달에만 6개사가 상장에 나섰다. 기업인수목적회사인 스팩은 비상장 중소기업과 합병하기 위해 설립한 서류상 회사(Paper company)이다. 스팩이 상장될 때 공모주 청약을 하거나 주식시장에서 스팩을 매수하면 서류상 회사의 주주가 되는 것이다.
스팩은 보통 2000원의 가격으로 상장한다. 500만 주를 발행하면 현금 100억 원을 갖고 있는 시가총액 100억 원의 서류상 회사가 된다. 스팩은 3년 이내에 합병할 비상장 중소기업을 찾아다닌다. 주로 스팩 설립 관련 발기인들이 그 역할을 한다.
스팩이 비상장 중소기업과 합병하면 그 중소기업은 상장사가 되고 스팩 주식을 가진 투자자는 비로소 사업을 하는 상장사의 주주가 된다. 만약 알짜 중소기업과 합병하면 주가가 오를 확률이 높아지고 그렇지 않은 기업과 합병하거나 3년 이내에 합병을 못 하면 내려갈 가능성이 커진다.
만약 3년 내에 적당한 합병 상대방을 만나지 못하면 스팩은 해산한다. 이때 스팩주주들에게 한 주당 2000원에 3년치 이자수익 일정분을 더해서 환불해 준다. 즉 손해 볼일은 없다. 상장 후 비정상적으로 급등한 스팩주를 사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2000원에 500만 주를 발행한 스팩의 시가총액은 100억 원이므로 기업가치가 300억 원 정도로 평가되는 회사와 합병을 하면 400억 원짜리 기업이 새롭게 탄생한다. 이때 새 회사는 스팩 주주와 비상장 기업 주주들에게 합병기업의 주식을 1대 3의 비율대로 나누어 준다.
만약에 주식시장에서 스팩의 주가가 급등하면 합병 성사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300억 원 정도 평가받는 기업이 현금 100억 원만 가진 스팩을 그 이상으로 평가해 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 비상장 중소기업의 주주들이 합병 후에 신주를 적게 받게 되니 합병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이 침체하면서 이상하게 스팩이 과열 양상을 보인다. 2000원으로 상장했는데 한 주당 8000원 넘게 거래되는 스팩도 보인다. 문제는 이런 스팩 구조를 모른 체 매수했다가 나중에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렇게 스팩의 가격이 비싸면 그 어느 중소기업도 스팩과 합병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주식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주식을 산 주주들은 더 비싼 가격으로 다른 사람한테 팔지 않는 이상 3년 뒤에 2000원과 약간의 이자수익만 손에 쥐게 되니 손해가 막심하다.
비상장 중소기업과 합병하기 위해 만들어진 스팩인데 요즘은 해외 유명 기업과 합병 가능성을 소재로 해서 주가 띄우기까지 하는 예도 있다. 해외 기업이라 합병 자체가 성사될 수도 없고 규모가 너무 커서 합병 비율은 계산조차 불가능하다. 가능성 0%라고 봐야 하는데 잘 모르고 ‘좋은가 보다’ 하는 심정으로 매수하는 투자자가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주식시장이 매우 힘들다 보니 달콤한 악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럴 때일수록 군중심리에 휩쓸리기보다 중심을 꽉 잡아야 한다. 모든 금융상품은 투자 전에 내용과 구조를 완전히 숙지해야 한다. 그래도 성공하기 어려운 시장인데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투자가 아닌 그저 운을 바라는 도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