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코스피는 원래 그래

입력 2022-09-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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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안 좋을 때 들어오셨네요.” 증권업계 관계자를 만나 분위기도 풀 겸 자본시장부에 온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면 곧잘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업계에 오래 몸담은 ‘베테랑’들이 보기에도 지금은 투자든 취재든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일 테다. 그러면서 늘 이렇게 덧붙인다. “사실 작년 같은 경우는 개미들 덕에 크게 오른 거고요, 코스피는 20년 동안 박스권에서 움직여 왔어요. 코스피는 원래 그래요.”

위로 아닌 위로(?)에 말을 더 얹지는 않지만 머릿속에선 물음표가 둥둥 떠다닌다. 우리 증시가 20년 내내 제자리걸음을 하는데, ‘원래 그래’라는 명제가 쉽게 납득이 갈 리 없다. 2007년 코스피가 처음으로 2000선을 돌파한 이후 지난해 3000포인트를 넘길 때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4년이었다. 물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2400선을 지키는 것도 어려운 상태가 됐지만.

전 세계 주식시장이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우리 증시는 과도하게 저평가돼 있는 게 사실이다. 국내 상장사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선진국의 52%에 불과하고, 신흥국과 비교해도 58% 수준에 그친다는 자본시장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증시가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이란 기대도 통하지 않고, 미국 주식과 달리 국내에서는 장투(장기 투자)가 답이 아니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선결과제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꼽힌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국내 기업의 주가 가치가 실제보다 평가 절하되는 것을 말한다. 2000년대 처음 등장한 말이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와 미흡한 주주 환원 등을 주원인으로 지목한다.

우리 증시의 고질병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한 논의의 장이 마련된 건 긍정적이다. 문제는 진단과 처방은 넘치는데 실효성 있는 ‘약’이 없다는 거다. 증시를 떠받치는 건 탄탄한 펀더멘털(기초체력)이지만, 다른 한 축에는 투자자들의 믿음이 자리한다. 신뢰 회복이 없다면 코스피는 다시 오랜 기간 박스권에 머무를 공산이 크다. ‘원래 그런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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