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치물 반환청구권 소멸시효는 계약이 성립한 때부터 계산한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A 사가 B 사를 상대로 낸 물품인도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임치물이란 임치계약에 따라 임치인이 보관해 달라고 맡긴 금전이나 물건을 말한다.
A 사는 현대차에 촉매제를 납품하고, B 사는 현대차에 촉매정화장치를 납품하는 계약을 각각 체결했다. A 사는 현대차 지시로 촉매제를 B 사에 인도하고, B 사는 촉매제를 사용해 촉매정화장치를 생산, 납품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A 사는 촉매제를 넘긴 만큼 촉매정화장치를 납품하지 않아 생긴 잔여 촉매제를 B 사가 보관하고 있다며 이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예비적으로는 잔여촉매제가 없어졌을 경우 24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1심은 A 사 손을 들어줬다. 묵시적 임치계약이 성립해 B 사가 잔여 촉매제를 반환해야 하지만, 갖고 있지 않아 A 사의 예비적 청구대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봤다. 다만 A 사 주장보다 B 사에 넘어간 촉매제 수량이 적다고 보고 B 사가 20억여 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2심에서 B 사는 임치물 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을 추가했다. 촉매제 인도 시점을 기준으로 소멸시효가 기산되므로, 소송 제기 전 상사시효기간 5년이 지난 촉매제에 대한 부분은 배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1심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2심은 “임치계약 특성상 임치인이 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목적물을 계속 보관시키고 있는 동안은 수치인에 대해 임치계약에 따른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소멸시효는 임치계약관계가 종료해 수치인이 반환의무를 지게 되는 때, 즉 임치기한이 도래하거나 임치인이 해지권을 행사해 반환청구권이 발생한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임치계약 해지에 따른 임치물 반환청구는 임치계약 성립 시부터 당연히 예정된 것이고, 임치계약에서 임치인은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하고 반환을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그러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치물 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임치계약이 성립해 임치물이 수치인에게 인도된 때부터 진행하는 것이지, 임치인이 임치계약을 해지한 때부터 진행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임치계약이 성립된 경우 임치물 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이 언제인지를 판시한 대법원 첫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