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믿을 수 있는 상장사란

입력 2022-08-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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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자본시장2부 기자

“기사 제목에 줄어든 영업이익을 쓰다니, 이 얼마나 악의적입니까!”

최근 업계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언급된 황당한 경험담 중 하나다. 어느 상장사에서 실적을 발표했는데, 매출액은 늘고 영업이익은 줄었다. 회사 측은 늘어난 매출액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어느 언론이 기사 제목에 영업이익이 줄었다고 썼다. 그러자 회사 관계자는 ‘악의적’이라며 격분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화만 낼 뿐 주주들에게 수익성 악화 이유와 향후 대책을 알릴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고 했다.

주식시장을 취재하다 보면 상식이 통하지 않은 이들을 간혹 만난다. 심지어 회사 오너가 신약 관련 정보를 지인들에게 미리 알려 주식을 사게 해 ‘미공개정보이용’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하자, ‘어떻게 알았냐’며 따져 물은 이도 있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연상된다. 남의 말이나 사회적 통념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느낀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작중 주인공인 우영우는 자폐스팩트럼 장애 때문이지만, 이들은 편협하고 이분법적 사고 때문이다.

‘악의’란 사전적 의미로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마음’이다. 굳이 언론이 특정 인물이나 기업을 해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기업이 불편해할 것이 뻔한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듣는 것은 ‘투자자가 알아야 할 정보’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정보는 그 회사의 주인인 ‘주주’를 위한 것이다. 그 회사 주식을 이미 가지고 있거나 앞으로 보유할 이들이 회사에 대해 알겠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자금조달은 좋고, 정보공개는 싫다는 것은 억지다. 의무 없이 권리만 챙기겠다는 이런 행태를 세간에서는 ‘도둑놈 심보’라고 부른다. 특히 우리나라 법은 재산상 이익을 위해 남을 기망하는 행위를 ‘사기’라고 명명했다.

물론 기업에 악재는 없는 편이 좋다. 그러나 개인의 삶에도 부침이 있는데 기업이라고 명과 암이 없을 수 없다. ‘믿을만한 상장사’란 억지로 좋은 모습만을 강조하는 회사가 아니라, 있는 그 대로와 대책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회사란 뜻이다.

믿음이란 자본시장의 근간이다. 믿음이 없다면 주식이나 채권은 존재할 수 없다. 더 나아가 금융 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현행 법규가 ‘자본시장법’을 따로 정해 놓고 불공정 행위를 강하게 제재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 증시에 ‘믿을만한 기업’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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