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반지하도 사람 사는 집이다

입력 2022-08-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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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 병원에서 산책이라도 하시면서 밥도 드시고 건강 챙기세요.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계셔요!”

“오냐. 내 강아지 고맙다.”

115년만의 폭우가 집어삼키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반지하는 엄마와 큰딸, 작은딸, 손녀 네 식구에게 아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였다.

사용한 비닐봉지까지 씻어 다시 써가며 모은 돈으로 장만한 첫 집이었고, 지난달에는 이사한 지 7년 만에 방도 새로 꾸몄다고 한다.

그런데 수마가 이들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115년 만의 폭우가 쏟아진 8일 밤 이들이 사는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 갑작스럽게 물이 차 올랐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참변을 당했다. 병원에 입원 중이었던 할머니는 홀로 남아 이 모든 슬픔과 고통을 감당하고 있다.

당시 도로 물이 허벅지까지 찰 만큼 비가 내려 반지하 현관은 문을 열 수 없을 정도였다. 방범창 있는 창문이 유일한 탈출구였는데, 불과 수 초 만에 물이 차오르면서 손 쓸 새가 없었다고 한다.

같은 날, 관악구에 인접한 동작구에서도 반지하에 사는 50대 여성이 키우던 고양이를 구하러 갔다가 살아 나오지 못했다.

이 안타까움 죽음들을 계기로 ‘반지하 딜레마’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안전을 생각하면 없애는 게 맞지만, 거주자들을 어떻게 이주시킬지가 큰 고민거리다.

9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참사가 일어난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찾았고, 바로 그 다음날, 서울시는 점진적으로 지하와 반지하를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12일 경기도도 반지하 밀집 지역에 대한 정비사업을 촉진하기로 했다. 반지하 거주자들이 공공임대 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게 보증금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이다. 이를 위해 반지하 주거 형태를 전면 조사하기로 했다.

반지하 주택 침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매번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겪어온 일이다. 반지하 거주자들은 장마철마다 모래 주머니로 작은 제방을 만들고, 홍수가 나면 물이 빠진 뒤 옷과 가구를 골목길에 널어 놓고 말리기를 반복했다. 곰팡이 핀 벽지와 장판, 축축한 공기는 덤이다.

그런데 주요 지자체들은 이 문제가 마치 올해 처음 벌어진 일인 양 호들갑이다. 서울 강남 일대도 이미 10년 전 물난리를 겪고 ‘항아리 지형’ 때문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대응할 시간이 10년이나 있었지만 같은 참사가 또 벌어진 것이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국 반지하(지하 포함) 주택은 32만7320가구였다. 이 가운데 서울에 20만849가구(61.4%), 경기도에 8만8000가구 등 수도권에 대거 몰려 있다.

내 집 마련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대, 삼성, 롯데 같은 대기업이 지은 아파트에 살고 싶다. 반지하에 살고 싶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반지하는 집중 호우에 취약하니 거주용도를 아예 없애자는 발상에 말문이 막힌다. 30만 가구가 동시에 움직일 만큼 공공임대 주택은 충분한지, 또 이주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즉흥적으로 말이 앞선다.

반지하가 어둡고, 습하고 방범, 폭우에 취약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도 수요가 있는 건, 경제 여건상 이게 최선의 선택이고, 이런 악조건들을 감수하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가성비 때문일 거다. 반지하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건 그만큼 비용 대비 입지 조건이 낫다는 것이고, 공간도 같은 규모의 지상 주택보다 넓게 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국토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하 임차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87만7000원,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은 23.8%로 아파트 임차 가구의 29.2%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고로 집이라는 건 마음이 편하면 된다. 누구에게는 100평짜리 아파트도 비좁게 느껴질 수 있지만, 누구에게는 8평짜리 비좁은 원룸도 널널한 안식처일 수 있다.

이런 보금자리를 반지하라고 해서 행정가들이 멋대로 살아라 말아라 할 권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가뜩이나 삶이 힘겨운 이들이다. 당장은 폭우 피해로 인한 개보수 지원부터 하고, 정부 주택공급정책과 맞물린 장기 플랜을 내놔야 한다.

또 창고든 주차장이든 반지하 용도를 바꾸더라도 물난리 나면 피해는 마찬가지다. 호우 피해 생겼을 때 돌릴 양수기 먼저 채워 놓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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