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올 상반기 회사채 순매수 금액 ‘전년대비 반토막’

입력 2022-08-03 17:53수정 2022-08-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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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75억 순매도 우위…1월 3793억 이후 최대 규모

기관투자가들이 우량 회사채마저 외면하면서 기업 자금 조달 창구인 회사채 시장에 잿빛 그림자가 확대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3%로 두 달 연속 6%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이 불확실해졌고,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이 펀드에서 발을 빼자 기관들이 “이런 리스크를 안고는 회사채를 사지 않겠다”며 보이콧하는 유례없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치솟는 물가와 글로벌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글로벌 경기 둔화로 서둘러 자금 확보에 나선 기업들이나 중소·중견 기업 모두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으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회사채 안 사는 기관, 추가 물가상승·펀드 환매 부담 가중되나

3일 삼성증권에 따르면 7월 한 달간 기관투자자는 회사채를 2875억 원어치 순매도했다. 이는 올해 1월(-3793억 원) 이후 최대 규모다. 기관이 월간 기준으로 회사채를 순매도 전환한 것은 지난 2월(-1912억 원) 이후 4개월 만이다.

펀드 환매 등 운용 여력이 약해진 운용사들이 발을 빼는 모습이다. 기관별로 보면 지난달 투신(운용) 홀로 회사채를 1조220억 원 순매도했다. 뒤이어 △기금(-1302억 원) △보험(3807억 원) △은행(4840억 원) 순이다.

투자자들의 회사채 선호도를 가늠할 수 있는 신용스프레드도 올해 들어 가장 큰 폭으로 확대됐다. 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등급 AA-기준 신용 스프레드(회사채 3년물 금리-국고채 3년물 금리)는 72.7bp(1bp=0.01%포인트)로 집계돼 100bp 수준에 근접했다. 투자자들이 안전한 국고채 투자를 늘리고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위험한 회사채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는 의미다.

기관들이 회사채 투자를 꺼리는 요인은 금리 변동성이 커진 탓도 있다. 시장 금리가 계속 오르면 기관투자자들은 채권 평가 손실을 본다. 지난달 회사채 순매수액 급감도 7월 국내 기준금리 빅스텝(50bp)과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75bp) 인상 영향으로 풀이된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금리 변동성이 축소되어야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폭이 빠르게 좁혀질 수 있다”라며 “적어도 9월 미국 FOMC 이후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종료될지 여부가 크레딧 채권의 수요 회복에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고위 인사들이 2일(현지시간) 앞다퉈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발언을 쏟아냈다.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50bp(0.5%포인트, 1bp=0.01%포인트)가 타당하다는 평가지만, 75bp도 괜찮다”고 말했다.

‘베이비스텝(금리 0.25% 인상)’을 말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물가가 예상 밖을 벗어난다면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인상하는 ‘빅스텝’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기업들 ‘돈맥경화’…대기업만 회사채만

기관들의 회사채 외면 속에 발행시장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수요가 몰린 AA급 우량 회사채는 품귀 현상을 빚은 반면 A급 이하 회사채 경우는 미매각 사태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경기가 위축되면서 신용등급 하락이나 채무 상환·결제 불이행에 대한 우려로 거래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석유화학·민자발전·음식료·철강·건설(한국기업평가 부정적 전망 업종) 등 일부 업종 회사채는 천덕꾸러기가 될 가능성은 짙어졌다.

7~8월 중 공모 회사채 발행 채비를 하는 기업들은 HD현대, 통영에코파워, SK텔레콤 등 대기업 계열사로 제한되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중견기업은 자금조달계획을 미루는 형편이다.

시장전문가들은 회사채 시장이 살아나려면 근본적으로 경기가 살아나야만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경화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위원은 “투자등급 기업의 경우 신용도에 부정적인 요인을 일정 수준 통제하거나 감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러나 투기등급 기업은 사업 환경뿐만 아니라 자금조달 환경 악화 대응력이 취약하다. 단기간 내에 급격한 신용도 하방 압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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