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탁상행정 규제와 민심(民心)

입력 2022-08-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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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헌 유통바이오부 차장

2012년 도입 이후 줄곧 논란이 됐던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10년이 지난 이제야 변화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대통령실이 국민들의 요구가 많은 내용들 중 10개를 추려 ‘국민제안’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투표를 실시했다. 지난달 31일 종료된 투표 결과 제안된 10건 중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총 57만7415개의 ‘좋아요’를 얻어 1위를 기록했다.

정부는 이를 국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투표는 법적인 힘이 없어 여소야대 형국에서 국회 통과가 어렵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주요 정책 사안을 인기투표처럼 취급하는 것에 대한 볼멘소리도 있지만 수십만 국민이 투표했다는 점으로 볼 때 이 역시 ‘민심(民心)’으로 보는 게 맞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발표한 소비자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67.8%가 ‘대형마트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가장 응답률이 높은 이유로 ‘전통시장·골목상권이 살아나지 않아서’(70.1%)를 꼽았다.

의무휴업일 등 대형마트 규제는 2012년 ‘그때’는 맞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10년 사이 세상은 완전히 변했다. 이커머스 업계가 유통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달하는 동안 대형마트는 매장 수와 임직원을 줄이면서도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로 바뀌었다.

그 사이 수차례 개선요구가 있었고 기회도 있었지만 공무원 집단과 정치인들은 책상에 앉아 들어온 소상공 단체들의 탄원서만 들여다보는 탁상행정으로 지금까지 오게 됐다. 새 대통령이 뜯어고치겠다고 나서고 국민들은 여기에 ‘응답’했지만, 아직도 이 정책이 여기서 멈출지, 명맥을 더 유지하게 될지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탁상행정 사례는 최근에도 눈에 띈다. 이커머스 플랫폼에 적용되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도 이제 겨우 자리 잡기 시작한 플랫폼 혁신을 막을 것이란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은 플랫폼과 소비자 간의 불공정 행위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예를 들면 전자상거래 플랫폼 입점 업체와의 거래 과정에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플랫폼 업체도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플랫폼에 일부 책임을 부과한다는 취지이지만, 이커머스의 특징인 자율성 때문에 저렴한 가격과 원활한 배송 등이 가능한 상황에 족쇄가 늘어나면 산업의 탄력성마저 잃을 수 있다는 우려는 과연 기우일까. 오픈마켓 사업자가 판매자 성명, 주소, 전화번호 등의 신원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은 당근마켓 같은 개인 간 간편한 거래 방식(C2C)으로 성장한 중고 거래 플랫폼들에는 치명적인 규제일 수밖에 없다.

모든 규제는 선의로 포장된다. 규제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맞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는 업계에는 피해를, 소비자에게는 불편함을 초래할 뿐이다. 이미 과거의 수많은 사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책상을 마주하고 나오는 탁상공론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책상을 박차고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현실을 반영한 더 나은 규제를 만들 수 있다. 규제에도 ‘현장’과 ‘민심’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백번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car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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