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부산국제모터쇼를 앞둔 때였으니 벌써 21년 전입니다. 수도권이 아닌, 부산에서 열리는 대규모 국제모터쇼에 자동차 업계가 적잖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행사는 부산시가 주도했습니다. 1990년대 말 삼성자동차 출범에 맞춰 지역 자동차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갖가지 묘안을 짜냈고, 그 끝에 모터쇼 개최를 결정했던 것이지요.
커다란 행사를 앞두고 주요 단체가 주도권 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부품업계 단체인 한국자동차공업조합은 주요 회원사와 차 부품업체에 ‘부산국제모터쇼의 참여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는데요. 이듬해 열리는 서울국제모터쇼 준비를 이유로 “유사한 행사(모터쇼)에 참가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 골자였습니다. 서울모터쇼는 완성차 제조사를 회원사로 둔 자동차공업협회(현 KAMA)와 부품업계가 주축입니다. 연간 150만 대 안팎의 자동차 시장에서 국제모터쇼 하나를 두고 기 싸움이 벌어진 것이지요.
다행히 첫 행사는 현대차와 기아는 물론, 르노삼성과 쌍용차 등 국내 완성차들이 대거 행사장에 부스를 차렸습니다. 이에 맞서 당시 다임러크라이슬러와 BMW, 아우디, 폭스바겐 등 수입차 업계도 공격적으로 참가했습니다. 국산차와 수입차 모두 참여하는, 11개국 207개 업체가 참가하면서 성공적인 첫 행사라는 과업도 달성했습니다. 행사장인 부산 벡스코 앞마당까지 화려한 신차들이 줄지어 전시됐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부산모터쇼의 전성기는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이후 격년으로 열린 행사는 조금씩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규모는 물론 위상까지 추락했습니다. 반짝이는 신차가 늘어선 모터쇼 부스마다 영업사원들이 나서 관람객에게 명함을 돌리는 판촉 행사장으로 전락했으니까요.
14일 부산모터쇼가 개막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4년 만에 열리는 행사입니다. 우리는 한때 이 행사를 두고 “슈퍼카가 없는 모터쇼가 어찌 국제모터쇼일 수 있느냐”고 반문했으나 이제 그런 질문마저 무색하게 됐습니다.
슈퍼카는 고사하고 수입차들마저 행사를 등졌으니까요. 올해 행사에는 국산차 가운데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 등 3개 브랜드만 나옵니다. 수입차는 전체가 등을 졌다가 BMW그룹코리아가 어렵사리 참가를 결정했습니다.
현대차그룹조차 부산모터쇼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2020년 서울모터쇼를 목전에 두고 현대차는 8세대 쏘나타를, 쌍용차는 3세대 코란도를 선공개했습니다. 복잡한 모터쇼에 뒤섞이기보다 오롯하게 신차 출시의 영광을 스스로 누려보겠다는 욕심 때문이지요. 이번 부산모터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관심을 모았던 현대차의 두 번째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6은 모터쇼에 앞서 온라인 사전공개 행사를 준비 중입니다. 심지어 부산모터쇼 출범의 근간이었던 르노코리아마저 이번 행사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제모터쇼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마저 쏟아집니다. 주도권 싸움으로 시작해 판촉 현장으로 전락한 행사에 우리의 편견은 더 깊어집니다. 이게 모두 시대 흐름을 따르지 못한 주최 측의 문제입니다. 누가 책임질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