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국회로 출근할 때마다, 정문 앞 빈 공터에 이따금 시선이 머문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 농성장이 차려졌던 자리다.
아마 시선이 멈춘 이유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의 미류 활동가가 46일 차 단식 투쟁을 종료하면서 외친 말이 생각나서일 것이다.
“더는 국회 앞에서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국회가 찾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찾아올 정치가 부재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치의 부재’가 길어지고 있다. 여야는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놓고 싸우더니 이제는 입법 공백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회를 열 의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달이 지난 농성장의 외침이 오늘날 더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최근 차별금지법에 대한 공청회를 다녀온 한 참석자가 밥을 삼키다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다음 법사위가 논의를 이어갈 수 있을까” 원 구성조차 못 하는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이 다시 국회 문밖으로 밀려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배어있는 것이다.
원 구성 합의가 지연될수록 ‘정치의 빈자리’도 커진다. 법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풀고, 부족한 부분은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논의를 미뤄왔으면 국회는 더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우선 여야는 절박한 심정으로 개원 협상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미뤄왔던 입법 과제들을 하나씩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국민의힘이 ‘참석 거부’로 반쪽 공청회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여당의 이름으로 ‘반쪽’을 채워야 한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드는 데 앞장서는 여당의 역할이 필요하다.
민주당도 ‘민생 우선’을 이유로 논의를 미뤄선 안 된다. 차별과 혐오로부터 공동체를 회복하자는 차별금지법 역시 ‘민생 법안’이다. 민주당이 써야 하는 반성문에는 ‘나중에’로 미룬 시간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정치의 존재’를 알리는, 21대 후반기 국회 출범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