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긴축 여파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진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펀더멘탈을 지키기 위해 자금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 고유가 등이 국내 기업의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금리마저 치솟게 되면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자금조달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어서다. 당장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거나 임직원들의 연봉 인상에 소극적으로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내년 말까지 경기침체에 직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17일 비영리 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에 따르면 지난달 10∼24일 전 세계 주요 기업의 CEO와 고위 임원 75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주 사업장이 있는 지역에서 내년 말이 되기 전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답했다. 특히 글로벌기업 최고경영자(CEO) 10명 중 6명 이상이 내년 말까지 경기침체에 직면할 것으로 바라봤다. 또 응답자의 15%는 이미 경기침체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는 반년 만에 3배 가까이 불어난 수치다.
경기침체 인식이 확산하면서 기업들은 ‘자금 잠그기’에 나서고 있다. 고금리 상황을 앞두고 있어 이자 부담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기업 실적 둔화와 재무구조 악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투자도 금리 때문에 부담스러워 받지 못하는 상황이고, 더욱이나 투자를 해주겠다는 투자사들도 경기침체를 인식해 위축된 상태”라며 “새로운 사업을 펼치기보단 일단 버티는 것이 중요한 시기이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투자 의욕 상실은 임직원의 연봉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장 기업 10곳 중 9곳은 연봉 인상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리어테크 플랫폼 사람인은 20일 기업 848개사에 ‘연봉 인상 부담’에 대해 설문조사 한 결과, 기업의 71.9%가 올해 연봉 인상이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특히 IT업계에선 91.9% 부담스럽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연봉인상이 부담스러운 이유 1위로 ‘올려줄 여건이 안 돼서’(55.4%, 복수응답)를 꼽았다. 이어 ‘현재도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44.9%), ‘기업 규모 간 격차가 더 커져서’(27.2%), ‘이직 및 퇴사자가 늘 것 같아서’(22.1%), ‘실적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서’(15.6%) 순이었다.
올해 안에 연봉 인상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기업 10곳 중 9곳(88.3%)이 없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연봉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기업 전체 실적 및 목표 달성률’(50.1%, 복수응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이어 ‘회사 재무 상태’(42.8%), ‘개인 실적(인사고과) 및 성과달성률’(41.9%), ‘물가 상승률’(23%)이었다. 고금리와 고유가 등 경영 사정이 악화하자 연봉 인상에 소극적으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의 ‘자이언트스텝’ 금리 인상으로 기업들에 대한 달러 환수가 시작됐다”며 “2008년 금융위기처럼 갈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현금을 비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향후 2~3년간 물가가 잡힐 때까지 고금리 상황이 지속할 것으로 보이고 기업들도 그때까지 투자에 소극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