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담소] 집보다 좋은 시설은 없다

입력 2022-05-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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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우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 회장·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

수십 년간 정신병원에서 생애를 보낸 60세 강철구(가명) 씨는 지역사회복귀를 목적으로 우리마을에 입소하였다. 그는 의욕적으로 자립생활훈련에 참여하였다. 사례관리 담당자는 3개월 후 그가 퇴소하여 거주할 가정형 그룹홈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러나 가족도 없고 자립능력이 부족한 그를 받겠다는 그룹홈은 퇴소가 임박할 때까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그룹홈 대신에 정신요양원 입소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신요양원에 들어갈 바에야 차라리 정신병원을 가겠다”면서 전에 입원했던 병원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가 다시 정신병원에서 나오기는 쉽지 않을 터인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를 다시 받기 위한 지역사회의 준비는 아직 촘촘하지 못하였다.

조현병 환자의 정신병원 입원, 중증장애인의 장애인시설 입소, 치매 노인의 요양시설 입소 등은 우리 사회가 통상적으로 사용해온 장애인 주거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정신병원 입원 기간이 가장 길고, 중증장애인과 치매 노인은 시설로 들어가서 거기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상례가 되어 버렸다. 이런 병원 입원과 시설입소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어떤 정신질환자, 장애인, 치매 노인도 스스로 원하여 그곳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급성기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최소한의 입원이 아닌, 수용을 위한 장기입원이 누군가에게 가해진다면, 그가 가진 자아 기능은 축소되고 사회적 기능은 감퇴의 경로를 밟는다. 그리고 강철구 씨처럼 독립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신세로 전락한다. 중증장애인도 치매 노인도 시설화를 통해 가족과 이별하고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이것은 가족과 사회의 부담을 다소 줄여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하여 사회가 암묵적으로 행사하는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시설에서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내 집보다 좋은 것일 수 없다. 최근 정부의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보호) 정책은 이런 폭력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된 개혁이다.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 나는 결국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병원으로 되돌아간 강철구 씨, 그들에 대한 죄책감과 훗날에 늙어 버린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일지 불안이 밀려온다.

황정우 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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