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름'이 담긴 법

입력 2022-04-20 16:19수정 2022-04-21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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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림 정치경제부 기자.

"무조건 집으로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이주환 씨는 잠시 생각을 하다 말문을 뗐다. 딸이 떠난 그 날, 아빠는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지 못한 자신을 한없이 탓했다. "제가 그날요, '예람아 중요한 일이 생기거든 즉각 아빠한테 연락하거라'만 말하고 데리고 오질 못했어요." 그의 딸은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다. 그렇게 아빠는 휴가 나온 딸을 마중 나갈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다. 대신에 그는 잃어버린 딸의 명예를 찾겠노라고 수없이 다짐했다.

그리고 지난 15일 딸의 이름이 박힌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고 이예람 중사 특검법'은 이 중사의 사망 사건과 관련한 공군 내 성폭력 및 2차 가해, 국방부·공군본부의 은폐·무마·회유 의혹 등을 특검 수사 대상으로 규정했다. 재석 234인 중 찬성 234인으로 사실상 만장일치 가결이었다. 군 인권 앞에 어떤 반대도 없었다. '찬성'을 누른 의원들이 200명에 이르기까지 단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6월 국회에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된 지 310일 만이었다.

국회를 찾은 아빠는 '통과'를 직접 확인한 뒤에서야 방청석을 빠져나갔다. 이날 본청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이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훌륭한 특별검사가 임명돼서 예람이 자결의 진실을 확인하고 다시는 예람이와 같은 젊은 군인들의 인권이 무시된 사망이 중단되기를 바란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이름이 법이 될 때, 우리 사회는 약속한다. 더는 이런 아픔을 반복하지 말자. '군 인권'을 호소한 이중사 아버지뿐만 아니라 지난 고 김용균씨 어머니도 그랬다. '김용균법'으로 불린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 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순간, 김미숙 씨는 "너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있었다고, 엄마가 가서 얘기해줄게"라며 눈물을 닦았다. 약자의 이름이 더는 법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이 약속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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