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주성철 영화평론가 “홍콩은 그 자체로 영화 같은 곳이다”

입력 2022-04-0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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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 전문가인 주성철 영화평론가가 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gusdnr8863@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나이와 내 나이가 드디어 같아지는 해, 2022년 4월 1일에는 무조건 홍콩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홍콩영화가 첫사랑이었던 수많은 이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전설적인 영화잡지 ‘키노’를 거쳐 ‘씨네21’ 편집장까지, 영화잡지에서만 20년 일한 사람. 바로 주성철 영화평론가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영화 예능 프로그램인 JTBC ‘방구석 1열’과 유튜브 영화 채널 ‘무비건조’에 출연 중이다. 그는 저명한 영화평론가이기 전에, 홍콩영화 애호가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최근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평론가로서의 근엄한 문체가 아닌 애호가로서의 천진난만한 문체가 돋보이는 영화 에세이다.

장국영이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1일, 그는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홍콩영화를 왜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나도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냥 좋다”며 “요즘도 혼자 집에 있을 때 OTT로 홍콩영화를 본다”고 말했다.

주 평론가는 “내가 영화 기자를 시작했을 때, 홍콩영화가 내리막을 걷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주류 언론에서 홍콩영화에 관한 기사를 거의 쓰지 않을 때였다. 선배들도 큰 관심이 없어서 막내인 내가 자연스럽게 홍콩영화를 맡게 됐다”며 “나는 학생 때부터 홍콩영화를 좋아했으니까 직업적으로 더욱 몰입하면 전문 기자로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다는 판단도 있었다”고 밝혔다.

▲홍콩 영화 전문가인 주성철 영화평론가가 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gusdnr8863@

홍콩영화 전성기는 1990년대였다. 장국영, 양조위, 주성치, 장만옥 등 숱한 홍콩 배우들이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을 때, 주 평론가는 중학생이었다. 그는 홍콩영화를 통해 영화라는 매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주 평론가는 “홍콩영화는 클로즈업이 아주 많다. 극장이라고 하는 크고 어두운 공간에서 숨을 죽이며 클로즈업을 통해 드러나는 배우들의 표정을 볼 때, 형용할 수 없는 에너지를 느꼈다”며 “음악이나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러한 감정의 파고를 홍콩영화를 통해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영웅본색’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 매체의 특수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남자들이 싸우는 액션에만 환호했던 게 아니라 카메라의 움직임 등 영화의 형식적 측면과 죽음, 의리, 배신과 같은 영화의 내용적인 부분들을 처음 익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 평론가는 영화 기자로 일하면서 수많은 홍콩영화인을 인터뷰했지만, 정작 그가 가장 사랑했던 배우인 장국영은 만나지 못했다. 혹시나 장국영을 만나게 된다면 첫 번째로 하고 싶은 질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궁금한 건 없다. 다만 기자가 아닌 팬으로서 당부하고 싶다”며 “장국영이 감독의 꿈을 꾸면서 우울증이 더 심해졌는데, 그냥 배우로 계속 남아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소설 속 인물은 늙지 않지만, 배우는 늙는다. 같은 인간으로서의 배우라는 사람들은 나와 같이 성장한다. 거기서 오는 묘한 유대감이 있는데 이게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매혹”이라며 “많은 사람이 영화 창작의 최고 단계에 있는 사람으로 감독을 꼽을 때가 많은데 굳이 그런 욕심을 안 내셔도 좋지 않나. 나는 계속 당신이 당신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면서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주제넘은 당부를 전하고 싶다”며 장국영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사진제공=김영사)

“하나의 공간 안에 이렇게 서로 다른 영화가 만나고, 별개로 흘러갔던 서로의 시간이 겹쳐져 이야기를 건네는 곳이 홍콩 말고 또 있을까. 정말 홍콩은 그 자체로 영화 같은 곳이다. 이것이 우리가 홍콩을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책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는 영화 에세이면서 동시에 홍콩 여행에 관한 훌륭한 여행 에세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왕가위가 사랑한 골드핀치 레스토랑의 도회적 분위기가 있고, 장국영과 유덕화와 장만옥이 만나고 헤어지던 캐슬 로드가 있으며, 주윤발의 마음을 사로잡은 카이탁 공항의 야경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공간들을 거닐며 홍콩영화를 기억하고, 추억하려는 주 평론가의 발자국이 있다.

그는 “2년 전 마지막으로 홍콩 여행을 갔을 때, 사이잉푼과 케네디타운에 처음 갔다. 홍콩 서쪽에 있는 해안 지역인데, 최근 거기까지 지하철이 개통돼 다녀올 수 있었다”며 “홍콩을 가면 꼭 그곳에 가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특히 케네디타운 서쪽에는 사이완 수영창고라는 곳이 있는데, 어렸을 적 장국영이 찾은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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