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익 노린 석유업체 증산으로 결국 유가 안정
"에너지 전환의 가장 큰 리스크는 변동성 그 자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막이 열린 고유가 시대가 기후변화 대응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놓고 관련 업계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유가가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지만, 반면 오히려 고유가가 수익 창출을 노리는 석유 업체들의 증산 빌미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최근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따른 미국의 러시아산 에너지 제품 금수 조치 등으로 브렌트유와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등 국제유가 벤치마크 가격은 지난주 한때 배럴당 130달러 선을 돌파해 지난 2008년 7월 이후 거의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유가 상승으로 휘발유나 디젤 등 원유 관련 제품 가격이 치솟으면 소비자들이 비용에 더 민감해져 전기차나 수소차 등 청정 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현재로서는 비용적 혜택보다는 환경적 이점에 초점을 맞춘 일부 소비자들만 청정 기술을 선택하고 있지만, 유가가 계속 오른다면 금전적인 이익을 중시하는 소비자들도 유입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했을 때 시장에서 전기차가 주목받았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또한 수요가 늘어나면 그만큼 청정 기술 분야에 투자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유가 상승이 운송 부문의 전기화 속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하면서, 구축 비용이 많이 낮아진 태양열·풍력 발전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힘을 보탤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유가가 상승할수록 석유업체들이 고수익 유혹이 커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더 많은 업체가 석유·가스 시추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급이 늘어나 유가는 안정되고, 소비자들의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도도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미국 시추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일일 원유 생산량은 내년에 급증해 2019년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1225만 배럴)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해 러시아, 이란, 이라크, 미국 등 산유국 대부분은 원유 생산 원가가 낮다. 즉 유가가 오르면 이들 국가의 재정적 여유가 그만큼 커지게 된다는 점에서 산유량 증가 유혹은 클 수밖에 없다.
파샤 마흐다비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바버라 캠퍼스 정치학 교수는 “산유국들은 고유가 시대를 맞아 사회의 부를 석유에 재투자하는 것이 현재와 미래 정부 예산의 균형을 맞추는 데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고유가로 인해 생산이 늘어나는 경향이 짙어지게 된다면 청정에너지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지적이다. 리서치그룹 RMI의 데보라 고든은 “에너지 전환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가격이 높고 낮음이 아니라 변동성 그 자체”라면서 “급격한 가격 변동은 투자자들이 계획하기 어렵게 만들고, 심지어 대체 에너지 프로젝트를 고사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