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역에 가고 싶다] 110년 전 일제가 군산역을 만든 까닭은

입력 2022-02-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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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1876년 강화도조약에 따라 개항된 부산, 원산, 인천의 3개 항구와 목포, 진남포에 이어 여섯 번째로 개항된 항구 도시로, 일찍이 철도가 들어서면서 1912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첫 번째 역사는 일본 전통 목조양식을 따라 직사각형 형태의 단층으로 지어졌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역사가 소실되어 새로운 역사가 세워졌으며, 이때의 군산역사가 군산화물역으로 변경되었다가 2010년 12월 철거되었다. 군산선과 장항선은 1912년과 1930년에 각각 개통되었으나 충남과 전북을 가로지르는 금강에 가로막혀 이어지지 못했다. 2000년에 시작된 금강철교 공사가 7년여 만에 준공되면서 하나의 철도로 연결된다. 장항-군산 철도 연결로 기존의 대명동에 있던 군산역이 군산화물역으로 변경되고, 지금의 군산역이 내흥동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군산은 다른 개항 항구와는 달리 쌀 수출을 근간으로 하는 일본 상공인들의 경제적 중심지였다. 예로부터 온 나라에 필요한 쌀이 임피평야와 옥구평야에서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일제는 이곳의 기름진 쌀을 군량미로 가져가기 위한 병참기지로 개발하였다. 때문에 철도 군산선을, 신작로 전군가도를, 일본 오사카로 쌀을 실어 나르기 위한 3000t 급의 배를 댈 수 있는 부잔교를 건설하며 수확된 쌀의 75%를 소작료로 거두어 갔다. 때문에 근대 풍자문학 소설가 채만식의 ‘탁류’가 이 군산을 배경으로 태어났으며, 1927년에는 전국 농민항쟁 중 최대 규모인 옥구농민항쟁이 일어나게 된다.

▲구 군산세관 본관(전북기념물 87호)은 1908년 대한제국 자본으로 건립된 건축물로 문화서울역284, 한국은행 본점과 함께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꼽힌다.

군산의 장미동, 월명동, 중앙동, 신창동 일대는 마치 일본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군산은 1914년 일본인이 전체 인구의 47%에 이를 정도로 일본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은 곳이다. 구 조선은행과 나가사키18은행, 양곡창고 등 지금은 전국적으로 자취를 찾아보기 힘든 일제강점기 시기의 건축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배경으로 2013년부터 시작된 군산시간여행축제는 옛 군산역과 미곡취인소 등을 재현한 근대생활관과 역사박물관을 통해 수탈의 역사 속에서 항거했던 민족의 혼을 느끼며 마음에 새기는 중요한 역사문화자원이 되고 있다. 또한 구 군산세관 본관(전북기념물 87호·사진)은 1908년 대한제국 자본으로 건립된 건축물로 문화서울역284, 한국은행 본점과 함께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꼽히며 오가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군산은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20년대 무렵 군산은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과자점이 있던 도시였다. 단순한 과자점이 하나 있는 것이 아니라 과자업자들이 결성한 과자 조합이 있었을 정도였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이성당은 일본인 히로세 야스타로라는 사람이 만든 이즈모야 과자점 자리에 과자점을 하던 한국인이 들어와 과자와 빵을 팔게 된 것이 그 시초라고 전해진다

자료 국가철도공단 ‘한국의 철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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