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실손보험 3不, 불쾌 불편 불만

입력 2022-01-1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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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부국장 겸 금융부장

실손보험은 소비자 관점에서 불쾌(不快)하고 불편(不便)하며 결과적으로 불만(不滿) 가득한 상품이다. 물론, 실손보험의 도움으로 인생에서 큰 고비를 넘긴 이들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가입자의 인식을 살펴보면 깰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가입을 유지하기도 버거운 ‘계륵’이 바로 ‘실손보험’이다.

우선 개인적으로 한 달에 20만 원가량(부부 합산)의 보험료를 부담하고 가입 기간은 20년 가까이 돼 가는데 연간으로 20만 원 이상을 보상받은 기억이 없다. “건강하니 보험금을 받지 못했고, 이는 축복이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러나 보험 관련 통계는 건강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2020년 한 해 동안 실손보험으로 1000만 원 이상 보험금을 받은 이들은 전체의 2.2%(약 76만 명)이다. 반면 한 푼도 받지 않은 가입자는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의 62.3%에 달한다. 지금은 4세대 보험까지 나왔지만 1~3세대는 자기부담금이 없거나 많아야 30%에 그쳐 과잉진료에 나서도 부담이 없다.

내 보험료는 매년 올라 1세대에서 3세대로 갈아탔음에도 최초 가입 시 1인당 4만 원대에서 현재는 10만 원대로 뛰었다. 2.2%가 도대체 얼마나 받아가야 보험료가 매년 이렇게 급등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실손보험 가입자 중 일부겠지만 내 돈으로 남들이 수백만 원 들여 도수치료 받고, 점심시간에 줄지어 이른바 병원 쪽방에 누워 영양주사를 맞고 있다고 상상하는 건 불쾌할 수밖에 없다.

이 보험은 참 ‘불편’하다. 자동차보험처럼 어쩌다 한 번 청구하는 것도 아닌데 병원에 가서 낸 돈(비급여)을 돌려받기 쉽지 않다. 무려 13년을 기다린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법제화는 언제 될지 기약이 없다. 여·야를 통틀어 5개의 개정안이 발의되고,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원회 안건에 세 차례나 오르며 국회 통과 기대감이 컸지만,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을 이기지 못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의료기관이 실손보험 가입자의 요청을 받아 보험금을 전산으로 바로 청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보험계약자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의료기관에서 일일이 받아 보험사로 전송하는 번거로움을 없앨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사)소비자와함께 등 소비자단체 조사에 따르면 최근 2년 이내에 실손의료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었음에도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47.2%나 됐다. 보험금 청구 포기의 가장 큰 이유는 증빙서류를 종이로 발급받아 제출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고 귀찮아서였다

가입자는 남 좋은 일만 하는 것 같아 불쾌하고, 소액 보험금 청구도 불편하기 짝이 없으니 실손보험에 ‘불만’일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매년 오르는 보험료의 책임이 상품 설계를 애초에 잘못한 보험사에 있는데 애꿎은 가입자들에게 덤터기를 씌운다고 하소연한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각자에게 이득이 되게 하라”는 영국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의 충고처럼,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과잉 의료 쇼핑이 아니라 선한 의무를 다했을 때 모두가 이익이 되도록 상품을 만들어 내놔야 했다는 주장이다.

손해율이 급등하자 보험사마저도 불만이다. 보험사 중 10여 곳이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실손보험은 지속 가능성 ‘제로’다. 결국,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는 2021년 6월 이전 실손보험 가입자가 ‘4세대’ 개인 실손보험으로 계약을 전환하면 1년간 보험료의 50%를 할인해 준다는 고육책을 내놨지만, 과잉진료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정도 대책으로는 실손보험의 혜택을 만끽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진 소비자를 막을 수 없다.

재앙을 피하려면 소극적 방관이 아니라 적극적 선택이 필요하다. 1~3세대 모든 실손보험에 대해 받은 만큼 더 부담하는 전면적인 상품 재구조화가 절실하다.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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