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스쿨 학장, 파슨스디자인스쿨 경영학과 종신교수
아울러 디지털 디자인 구현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의 발전은 디자이너로서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세련된 디자인 구현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습득과 사용 편의를 증대한 디자인 소프트웨어와 더불어, 인공지능(AI)과 빅 데이터를 이용한 디자인 변형 프로그램들은 디자인 자료 알고리즘을 통해 특별히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쉽고 빠르게 새롭고 신선한 시각적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편집할 수 있게 해주며 디자인 능력의 대중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독자들 중에 아마도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라는 온라인 공간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듯하다. 2003년에 창업한 이 브랜드는 한동안 세상을 뒤엎을 기세로 유저들을 늘려갔다. 여러 기업들도 이 가상공간에 참여하며 아바타로 대변되는 유저들에게 디지털 패션을 포함해 인테리어 디자인 등 생활용품들도 만들고, 땅도 사고 팔며 진행되던 혁신이었다.
하지만 세컨드 라이프는 유저 확장 속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하고, 혁신 단계의 초기 수용자 이상의 마켓을 만들지 못하고 사라지는 듯하였다. 아무래도 어설펐던 아바타의 비주얼과 정교하지 못했던 어색한 공간의 구성, 아바타로 진행하는 소셜 컨택트가 어렵게 느껴지고, 이로 인해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세컨드 라이프의 확장성을 막았던 더 중요했던 이유는, 이 가상공간의 상업적 거래가 기술과 디자인 능력이 없는 유저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점이다. 즉, 이 가상공간에 의미 있고 심층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디자인 구현이 대중 유저들에게 절대적으로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세컨드 라이프에 그간의 기술 발전은 상황의 반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이 서비스는 별 디자인 능력이 없는 유저들도 상당히 세련된 디자인 구현을 가능하게 하고, 이름 그대로 다시 태어나 두 번째의 삶을 사는 느낌을 주는 가상공간을 구현함으로써 그 수요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즉, 기술의 발달이 디자인이 요구되는 마켓도 늘렸지만, 그 마켓에 디자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벽도 낮추고 시각 구현의 능력에 그다지 많은 교육을 요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정교하고 신선한 선의 조합을 만들기 위해, 생각하고 있는 3차원적 모형을 구현하기 위해, 원하는 색감의 조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릴 적부터 미술학원을 다닐 필요도 없고 디자인 전공 대학을 졸업할 필요도 없게 되어 가고 있다. 더불어 중요한 변화는, 디자인 능력의 대중화가 무엇이 좋은 디자인인지의 구별을 더 모호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디자인 교육에 큰 화두를 던진다. 기술의 발달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필요했던 교육이 줄어들거나 없어진다면, 디자인 학교들의 교과과정은 이에 어떻게 부응해야 하는지가 새로운 이슈가 된 것이다.
저서 ‘감성 디자인(emotional design)’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디자이너 도널드 노먼이 지난 8월 경제 월간지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에 투고한 내용도 바로 이런 점이다.
우리나라는 디자인 선진국을 추구한다. 디자인 선진국으로의 길에 중요한 요소가 마켓에 부합하는 디자인 교육이라면, 디자인 민주화가 변화시킬 디자인의 미래 교육에 깊은 고찰을 하여야 할 시점이다.